더 북한 사설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 없던 일로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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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핵실험을 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과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는 별개 문제"라는 황당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랬던 대통령이 어제 "북한의 핵실험이 전작권 문제와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전문가들과 꼼꼼히 챙겨 보겠다"고 말했다. 또 "방침을 변경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연구하겠다"고 덧붙였다. 애매모호하기는 하나, 기존 입장에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주목된다.

정부가 내건 전작권 단독행사의 논리는 두 가지다. 첫째는 2011년까지 150조원이 소요되는 국방중기계획이 완료되면 단독행사를 위한 전력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미군이 패트리엇 방공시스템 등 '보완 전력'을 제공키로 약속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대북(對北) 방어 시스템을 구축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그 자체로도 실현성이 의심스러웠지만, 북한의 핵 보유로 존립 근거를 전적으로 상실했다. 한국군이 확보하려는 전력은 재래식 무기다. 아무리 신형이라도 이런 무기를 갖고는 핵무기를 필적할 수 없다. 핵무기는 핵무기로서만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너희가 쏘면 너희도 파멸적 피해를 본다'는 '공포의 균형'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북한만이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심각한 안보 위기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기 제조는 불가능해 우리 힘만으로는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결국 미국으로부터의 핵우산 확보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한미연합사가 해체되고 한국군이 전작권을 단독행사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방부 당국자는 "전작권 환수에는 북한의 위협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 보유로 이런 전제가 깨져 버린 것이다. 아무런 대북 억제력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군이 전시에 무슨 효과적 작전을 할 수 있겠는가. 핵무기를 갖고 있는 미군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한마디로 단독행사를 추진할 수 있는 근본 토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고집한다면 그것은 국가 안보를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이런 점을 명심하고 전작권 논의를 백지화하라.

전작권 단독행사를 둘러싼 미국의 석연치 않은 태도도 우려된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가 "북한의 핵실험과 전작권 이양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비록 북한의 핵실험 이전에 나온 발언이지만 그가 실무 책임자라는 점에서 걱정된다.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 상황이 급변했다는 점에 유념, '2009년 무조건 이양'이라는 경직된 태도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제 한.미 정상 간 전화통화에서 "한국과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전작권 문제에서도 적용되길 기대한다. 조만간 개최될 예정인 한.미 연례안보협의회는 전작권 논의 대신 북한의 핵 위협을 차단할 수 있는 양국의 굳건한 안보 태세를 다지는 장(場)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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