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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물지(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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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봄이면 강물이 풀리는/쌉쌀한 바람 불면/인천에서 배가 온다/누런 조기를 가득 싣고/소금배며 새우젓배들이 줄이어 들어온다/황포돛단배가/강물위에 깃발을 흔들듯이/민어 대구도 싣고/마포나루에 돛을 내린다/…』
박치원시인의 연작시집 『서울』에 나오는 마포나루의 풍경이다. 물론 서울대교며 양화대교등이 들어서기 훨씬 이전의 얘기다.
당시 마포나루터에는 매일 수십척의 황포돛배가 드나들어 그야말로 파시를 이루었다. 이 배들은 주로 황해에서 잡은 수산물을 잔뜩 싣고 왔는데 그중에서도 새우젓이 특히 유명했다. 그래서 마포나루터에는 언제나 새우젓 독이 산처럼 쌓였고 새우젓 비린내가 진동했다.
이 마포나루는 6ㆍ25로 강화도쪽 한강하구가 막히면서 뱃길이 끊어졌다. 그리고 그 물길을 요즘은 황포돛배대신 최신형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다.
지난 서울올림픽 식전행사때 한강에 띄웠던 수십척의 선단을 보고 나이많은 사람들은 옛날의 마포나루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서울시는 이같은 마포나루의 옛 풍정을 재현하기 위해 새우젓배를 만들어 곧 진수시킨다고 한다. 도시의 현대화도 중요하지만 옛 것을 가꾸고 또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도 결코 소홀해서는 안된다.
그런 뜻에서 최근 원로아동문학가 어효선씨가 쓴 『내가 자란 서울』은 아스라히 잊혀졌던 불과 반세기전의 서울풍물과 인심을 포근한 정감으로 되살려주는 하나의 풍물지며 사회교과서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아온 그는 서울의 아침은 삐걱삐걱하는 물지게 소리에 동이 트고 골목을 누비는 행상들의 『­사료』소리에 잠을 깬다고 했다.
그때 서울의 집들은 좁아 아이들이 학교에 갔다오면 어른들은 『공부하라』고 성화하기는 커녕 밖에 나가 놀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도 으레 낮에는 뛰어놀고 숙제는 밤에만 하는 것으로 알았다.
당시 서울에는 떡집이 많았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군것질감은 떡이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각색으로 빚은 「색떡」은 잔칫상에 놓는 것인데,생일이나 혼인잔치에 부줏돈대신 색떡을 보내면 그 이상의 선물이 없었다. 그리고 색떡의 화려한 빛깔은 지금의 화환구실도 하여 잔칫집에서 자랑삼아 대청에 늘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풍물이며 풍속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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