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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토박이들 동창 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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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에는 3대 넘게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다른 구에 비해 유독 많다. 송파는 30년 전만 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곳. 발전기를 돌려 TV를 볼만큼 개발이 늦었던 곳이다. 그러다 보니 토착민들이 많이 남아 있게 됐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토박이 중 진골들이 대부분 가락동 중대초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이다.

◇중대초교는'송파 터줏대감'
= 중대초교는 1924년 개교해 지금까지 79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70년대 이전까지는 송파지역 유일의 초등학교였다.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리고 있는 만큼 송파구 토박이 중 상당수가 이 학교 출신임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대초교 동문회 이찬수(54·가락동)사무총장은 "중대초교 졸업생 중 30% 이상이 송파구에 그대로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광준(63·송파동)동문회 부회장은 "30년짜리는 명함도 못 내밀만큼 3대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들이 많다"며 "강남지역 구획정리를 하기 전 농촌생활의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을 토박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범열(54·가락동)동문회 감사는"환지를 도로와 공원용지를 제외하고 원래 토착민에게 돌려주었기 때문에 토박이가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일가친척이 모두 동문인 것은 물론이고,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선후배 사이도 많다. 4회 졸업생인 이범환(작고)씨는 슬하 8남매와 손자·손녀(28~48회) 모두 중대초교를 졸업시켰다.

◇'송파 마피아'
= 송파지역에서 중대초교 동문회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일가 친척이 모두 동문이다 보니 그 유대관계가 끈끈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중대초교 출신 토박이들은 지역여론 형성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1980년대 강남 일대의 구획을 정리할 때의 일이다. 당시 송파구 이름으로 '올림픽구'등 여럿이 물망에 올랐다. 그러나 중대초교 토박이들이 중심이 돼 "송파구로 지정할 것"을 강력히 요청해 결국 관철됐다. 장지동이란 이름이 공동묘지를 연상케 한다며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들의 반대로 무산되기도 했다. 지방선거·국회의원 선거철이면 이들의 주가는 더욱 올라간다. "당선되려면 중대초등학교 동문회를 잡아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많은 정치인이 긴밀한 유대를 맺고 싶어한다. 물론 동문이 선거에 출마하면 밀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정서를 공유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면 누구라도 조건 없이 지원한다.

14대에 걸쳐 송파에서 살고 있는 김인태(48·방이동)동문회 사무국장은 "송파지역에 우리보다 규모가 큰 단체가 없어 때로는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며"송파 마피아란 별칭이 있다"고 말했다.

각자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 토박이 중 돈 있는 사람이 학교발전기금이나 기부금을 내지 않을 경우 눈총을 받기도 한다.

동문회는 매년 1회 회보를 발행하고, 매월 1차례 이상 임원회의를 갖는 등 크고 작은 모임을 열고 있다. 우수 공무원 표창과 불우이웃 돕기, 소년소녀 가장에게 장학금 전달하기 등 지역봉사활동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요즘은 모교발전기금을 지원하고 있다. 오랜 전통을 가진 모교를 지원하는 것이 지역을 위하는 초석이라는 생각에서다.

# 중대초교 동문회 이경운 회장 "아는 사람 많아 행동 늘 조심하죠"
이경운(64·가락동) 중대초교 동문회장은 송파지역에서 18대째 살고 있는 토박이 중 토박이다. 그는 2000년 초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토박이가 많아서 좋은 점은 서로 외롭지 않고 경로 사상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지역행사와 경조사를 챙기는 등 단합하는 힘도 큽니다. "

물론 토박이들이 많아서 애로점도 있다. "행동에 제약이 따릅니다.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술 마실 때는 물론이고 담배를 피울 때조차 동네 어른들 눈치를 살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품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토박이의 중요성으로 "누구보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 강한 점"을 꼽았다. 지역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박이로서 책임과 역할도 크다. "지역이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조언해야 합니다. 구청에 반영 가능한 여러 사안을 건의하고 구 행사에도 적극 참여합니다. 송파 구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는 비(非) 토박이들과의 관계도 적잖이 신경쓰고 있다. 새로 이사 오는 주민이 있으면 빨리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는다.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갖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구청도 송파지역을 개발하면서 자연환경을 잘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이 회장은 앞으로 동문회 홈페이지 통한 모임의 활성화를 계획하고 있다.

프리미엄 김관종·라일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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