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외교」 돌연 화해바람/내일 노­김회담 앞둔 정가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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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로 대립정국 돌파구 모색중/내각제등 깊숙한 얘기 오갈 듯
3당통합이후의 첫 여야 영수회담을 앞두고 청와대측이나 평민당 모두 여야관계의 위상정립에 고심하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고위당정회의에서 『이번 영수회담을 평민당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김대중총재도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의 회담을 『2차대전이후 한반도에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걷어낸 역사적인 만남』이라고 평가하는등 화답을 하고 있어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3당통합후 멀어졌던 노­김대중총재간의 관계가 크게 회복될 것으로 보여 이것이 앞으로 정국추이와 관련해 주목을 끈다.
때문에 아무리 인색하게 보아도 3당통합이후 강파르게 맞서 오기만 했던 여야관계에 모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느냐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노대통령은 9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만나고 귀국하자마자 김대중평민당총재에게 전화를 걸어왔고 당내에서 반대가 많았던 국회상임위원장도 할애하기로 했다.
이상훈국방부장관과 정호근합참의장등은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 14일 김총재를 방문했다.
같은날 평민당이 주최한 국군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정책세미나에 현역장성이 토론자로 참석한 것과 더불어 극히 이례적인 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김총재도 3당통합 분쇄를 위한 1천만서명운동을 소리높여 외치던 얼마전과 달리 최근 들어서는 여유있는 웃음을 보이고 있다.
영수회담에서 내각제개헌 음모를 포기토록 권유하고 과연 민주주의를 할 것인지 따지겠다는 김총재의 결연한 언사들을 감안해보면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여권의 고위실력자는 이와관련,『이번 영수회담은 무슨 구체적인 논의보다는 지난해말 정책연합까지 거론되던 평민당과의 신뢰회복에 초점이 주어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따라서 구체적인 결실보다는 앞으로의 정치일정에 대한 상호간의 의사타진과 협조관계 구축방안의 모색이 논의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얘기.
이때문에 김총재가 제기했다는 현안인 지방자치제나 구속자문제ㆍ보안법 등 정치입법등에서는 딱부러지는 합의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양측 모두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노­김대중 관계회복의 약속으로 북방외교에 대한 초당대처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다.
노대통령 귀국후의 전화통화에서도 두사람이 앞으로 남은 중국문제나 남북한문제에서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대화가 오갔다는 것이며 김대중총재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북방문제에 대한 의견접근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보기 때문이다.
북방외교의 초당협조에 대해서 정부나 민자당쪽의 반응은 아직은 신중하다.
북방문제나 남북문제는 정부측으로 창구가 단일화되어야 한다는 게 기본입장이고 그렇다고 외교에 평민당을 굳이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영삼대표측은 이같은 창구 단일화를 굳이 더 강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측은 설령 북방외교에 대한 김대중총재의 적극적 활용까지는 생각지 않는다고 해도 김총재가 협조를 구해온다면 그것을 굳이 피하거나 막겠다는 생각도 아니다.
정부측이 이같은 평민당의 제안에 상당히 큰 폭의 융통성을 보이는 것은 북방외교에 초당대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앞으로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과 김총재의 최대관심사는 역시 내각제개헌등 정치일정에 관한 것이고 실제로 영수회담에서는 그 문제가 가장 깊숙히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앞으로 정치일정 추진에 대한 두사람간의 의중 타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논의의 어떤 것도 밖으로 흘러나오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따라서 영수회담의 「모양」으로 노대통령­김대중총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북방외교에 대한 초당적인 협력밖에 더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와관련,최근 남북 관계개선에 김총재의 요구나 역할에 대해 정부측의 양해가 있지 않았느냐는 추측도 있다.
북경아시안게임에 정부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시켜 김일성과 「조우」토록 한다는 방안과 평민당의원들의 북한방문단 파견도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는 말도 있다.
평민당의 한 고위당국자도 『영수회담ㆍ북방외교를 계기로 전통적인 여야의 대립구도가 변한다면 앞으로 정치문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으로 거론할 수 있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도 없지않다』고 해 여권의 희망사항을 묵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영수회담 내용을 바탕으로 야권통합등 그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북방외교의 성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노대통령이나 통합압력등 야권내부의 도전을 뿌리쳐야하는 김대중총재 모두 이번 영수회담을 그들의 필요에 맞게 조율하려고 북방문제등의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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