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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다른 북한 … 한반도 전쟁 위험성 높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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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의 핵실험 강행으로 한반도에 또다시 핵 소용돌이가 일고 있다.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이후 4년 만이다. '넘지 말아야 할 선'으로 여겨졌던 북한의 핵실험으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효용성도 떨어졌다.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강행한 배경과 향후 전망을 긴급 좌담회를 통해 들어봤다.

▶사회=북한이 당장 핵실험을 하지는 않을 것이란 낙관적 기대가 한순간에 깨졌다.

▶남성욱 교수=북한은 10월 3일 외무성 성명 발표 때 이미 핵실험 날짜를 정해 놓았을 것이다. 북한은 정해 놓은 길을 가고 있다. 지난해 5차 6자회담 이후 대미 관계가 풀리지 않자 대화보다 판을 깨는 전략으로 나갔다. 핵 보유 로드맵을 갖고 있는 북한이 당 창건일 전후로 핵실험을 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가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다.

▶고유환 교수=보통 핵실험은 실행한 뒤 공개하는데 북한이 이를 이례적으로 공표한 것은 협상에 무게를 둔 것일 수도 있다. 핵실험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부결속용이기도 하다. '우리는 핵을 가졌다.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지킬 힘이 있다'는 식으로 최면을 걸지 않으면 체제 불안이 심화되기 때문에 막다른 길에 다다른 것이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김근식 교수=북이 지금 핵실험을 선택한 이유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의 기억 때문이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클린턴 정부가 용인하기 어려운 레드라인에 한쪽 발을 걸쳐 놓는 전략으로 북.미 합의를 도출해 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꿈쩍도 안 했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94년 기억을 되살려' 레드 라인에 발을 살짝 걸쳐 미국이 움직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낙관론이다. 그러나 북의 희망대로 미국이 양자 협의에 나서진 않을 것이다.

▶사회=북한의 핵실험이 대미 협상을 겨냥했다는 의미인가.

▶남='협상용이다 아니다'하는 분석은 이제 의미가 없다. 핵실험 선언 때는 의도 분석이 중요했지만 핵실험이 끝난 상황에서 의도는 중요치 않다. 파장이 중요하다. 핵실험으로 어제의 북한과 오늘의 북한은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됐다. 때문에 협상이란 의도에 관계없이 북한을 봐야 한다.

▶고=북한의 핵실험을 핵무기 보유로 인정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크리스토퍼 힐 미 동북아 차관보도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도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에 핵실험을 정밀하게 평가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것인지, 원시적 수준의 핵무기로 보고 비핵화에 주력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김=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협상을 고려해 지금처럼 끌려가기보다 핵실험을 강행해 핵 보유국이라는 공식 지위를 확보하는 게 향후 북미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핵 불용'이라는 한국과 미국의 정책목표가 상당 부분 실패한 만큼 과거와는 다른 고려가 필요하다.

▶사회=북핵 실험이 남북관계 등에 미칠 파장을 전망해 달라.

▶남=남북관계의 균형은 이제 깨졌다. 지금까지 남북은 재래식 무기에 의한 군사적 균형을 이뤘지만, 북의 핵 보유가 기정 사실화된 지금 그 균형은 깨졌다. 군사적으로 북한이 남한보다 우위에 섰다. 이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한이 남한 선박을 나포해도 북을 제재하기 어려워졌다. 핵 보유 국가에, 핵 비보유 국가가 대응하는 것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일본의 안보 불안도 심각해질 것이다. 핵 폭탄을 두 번 맞은 일본은 핵 공포가 상당하다. 일본은 미국을 설득해 빠르게 핵무장을 추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에 핵 보유 도미노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고=핵실험은 동북아 전략 지형의 질적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북의 핵 보유는 핵확산을 초래한다. 일본은 수백 기 핵무기를 가질 수 있고 대만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경제.군사적으로 북의 안보는 치명적 위협을 받는다. 따라서 북한의 공세는 핵무기를 영원히 갖겠다는 것이라기보다 대미 협상카드의 성격도 강하다.

▶사회=어쨌건 국민 불안은 가중될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이 전쟁의 위험성을 고조시켰는가.

▶김=한반도의 전쟁 가능성은 핵실험 전보다 높아졌다. 그 가능성은 북.미가 얼마나 극단적으로 치닫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대결 상황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 수출이 강행되고 미국이 이를 봉쇄하는 상황이 되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고=북한의 핵 실험이 전쟁 위험성을 자동으로 높이기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 북의 핵 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쪽의 대응에 북이 호응하지 않으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남=핵폭탄을 맞아본 일본의 움직임은 신속하다. 그런 경험이 없는 우리는 북한 핵실험의 위험성과 파괴력을 실감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남북 간에는 상대방을 억지할 수 있는 균형이 있었기 때문에 전쟁 위험성이 낮았지만 북이 핵을 보유한 순간 이런 균형은 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 위험성은 당연히 높아졌다.

▶사회=이런 모든 점은 햇볕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인가.

▶고=햇볕정책의 취지가 한반도의 평화.안정 관리인데 그런 점에서 위기가 온 게 사실이다. 북한 문제가 한국의 대북 정책만으로 해결 가능하다면 모든 게 우리 책임이지만 국제적 변수로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론 위기관리 정책의 실패와 위기라고 볼 수 있다.

▶남=햇볕정책의 의도가 불순하진 않았지만 결과로 보면 실패했다.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한국의 역할엔 한계가 있는데 정부가 우리 역할을 너무 과신한 것 같다. 한국은 종속변수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민족 공조를 강조하는 햇볕정책의 논리를 재검토해야 한다.

▶사회=개성 공단,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남=남북경협이 한반도 평화.안정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미사일 발사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핵실험이 끝난 지금 이 문제는 국제여론에 따라야 한다. 민간사업이라 해도 국제 사회에서 예외가 없어야 한다. 한국은 국제 사회와 유엔이 결정하는 룰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현금 사용처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대북 사업은 자제해야 한다.

▶김=유엔 회원국인 한국은 유엔 대북 결의안 이행 문제와 햇볕 정책의 상징이자 남북 관계의 마지막 채널인 남북 경협의 문을 닫는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 핵실험을 규탄하는 우리만의 상징적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대북 포용정책의 성과인 경협을 끊는 것과는 구별해야 한다.

▶고=대북 제재는 가능하다. 금강산은 관광객의 감소로 자연스럽게 될 것 같다. 개성 공단을 강제로 문닫을 경우 정부가 협력기금을 통해 보조해 주는 차원이 있을 수 있다.

▶사회=북한의 핵실험은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남=두 개의 대응방법이 있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 들어가 대응하는 것과 한국도 핵무기를 갖는 것이다. 북의 핵 위협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비핵화 원칙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다. 미국을 설득해도 핵우산에 못 들어가면 우리도 핵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가야 한다.

▶고=한반도 비핵화가 불가능하면 우리도 핵을 가질 수밖에 없다. 미.북 대화로 비핵화가 실현되면 우리도 비핵화를 유지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사회=북의 핵무장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가 무력 공격할 가능성은.

▶고=군사제재는 어렵다. 북한의 지정학적 상황, 남북 관계, 중국의 반대 등 때문이다.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해 군사적 제재를 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반대할 것이다.

▶김=중국 입장이 난처해 졌다. 중국은 미사일 발사 이후 유엔 결의안에 찬성한 것으로 보아 핵실험 강행으로 인한 유엔 제재에 동참하겠지만 북.중 관계의 생명선을 끊는 단계로 가지는 못할 것이다.

▶사회=미국이 단독으로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없나.

▶남=미국은 핵의 제3세계 확산을 우려한다. 핵물질이 뉴욕에 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핵 이전 문제가 아킬레스건이라는 점을 미.북 모두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적 제재 논의는 시기상조다

▶김=북.미의 극단적 대결이 있을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미국을 극한으로 몰았다. 미국이 일단 유엔안보리 결의를 통한 대북 제재를 전면화시키고 강화시킬 가능성은 충분하고, 미국과 일본이 독자적으로 전면적 대북 제재를 감행할 수 있다.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도 군사적 긴장을 피하려 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북한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고=핵 보유국 지위를 얻고자 노력할 것이고, 지위를 얻은 후 6자회담을 열자고 나올 수 있다. 6자회담의 틀을 깨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도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당분간 교착과 위기 국면이 공존할 것이다.

▶김=미국이 6자회담을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94년처럼 북.미 양자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당분간 북한은 위기상황에서 단호한 의지를 과시할 것이며, 남북관계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다.

▶남=미국이나 남한이 움직이지 않으면 북한은 두세 차례 핵실험을 더 하는 등 핵 과시 전략으로 나올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적어도 비공식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을 계속할 것이다.

정리=유철종.정용수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 북한 핵 관련 일지

▶2006. 10. 9 북 조선중앙통신사, 핵실험 성공 발표

<♣제3차 북핵 위기>

▶8. 18 미 ABC 방송, 북 핵실험 준비설 제기

▶7. 16 유엔 안보리, 대북 규제 결의안 채택

▶7. 5 북, 미사일 시험발사

▶2. 16 방코델타아시아(BDA), 대북 거래 중단 선언

▶1. 18 북.미.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서 북 '선(先) 금융제재 해제' 요구, 미 기존 입장 고수

▶2005. 10. 25 미, 자국 내 8개 북 기업 자산 동결

▶9. 19 베이징 6자회담서 '북의 모든 핵무기와 현존 핵 계획 포기' 등 6개 항 공동성명 채택

▶2. 10 북, 핵무기 보유 선언

▶2003. 8. 27 베이징 6자회담 개최

▶1. 10 북, 두 번째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제2차 북핵 위기>

▶2002. 12. 12 북, 핵 동결 해제 선언

▶2000. 6. 15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국방위원장, 평양서 남북 정상회담

▶1998. 8. 31 북, 대포동 1호 시험 발사

▶1995. 3. 9 경수로 제공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

▶1994. 11. 1 북한 핵 동결 선언

▶10. 21 북.미, 제네바 합의(핵 동결 대가로 경수로 2기 건립과 연 50만t 중유 지원)

▶1993. 3. 12 북, NPT 탈퇴 선언

<♣제1차 북핵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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