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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건강보험도 중병 들게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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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보건복지부가 내년에 건강보험료를 6.5% 가량 큰 폭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전망도 밝지 않고 소비심리도 위축된 상태에서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은 국민에게 세금 인상만큼이나 우울하게 들린다. 물론 세금에 비해 건강보험료는 혜택을 받지만 국민은 유사한 공과금으로 체감하고 있다.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올리려는 것은 건보 재정수지가 악화됐기 때문인데, 왜 건보 재정에 빨간 불이 켜지게 되었는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건보 재정은 올해 말에 당기적자 1800여억원, 누적흑자 1조700여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직 흑자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건보 급여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어 누적흑자가 이른 시일 내에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다는 이야기다. 이는 2001년 의약분업으로 발생했던 일시적인 건보 재정 부담 때문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21세기적 재앙으로 불리는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노인층에 대한 급여비는 증가하지만 보험료를 내는 인구는 줄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보건복지부의 로드맵에 따라 추진되는 사업에 7000여억원의 추가 건보 재정을 투입할 예정이다. 여기에 16세, 40세, 66세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되는 이른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 제도' 등 신규사업까지 합치면 추가부담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보 재정이 바닥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리한 신규사업을 추진하며 손 벌리는 정부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특히 내년에는 대선이 있다. 정부가 선심성 복지정책을 남발하는 유혹에 빠지게 될 위험이 큰 상태에서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재원 조달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국민건강보험은 국민연금보험과 같이 '국민고통보험'이 될 것이 자명하다. 정부는 건보 재정에 압박을 느낄 때마다 건보료 인상과 함께 담뱃값 인상으로 건보 재정을 충당하는 매우 안이하고 행정편의적인 방편에 의존해 왔다. 올해 건보 재정 누적흑자가 급감하는 근본 이유도 올 상반기에 또다시 담뱃값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하고 로드맵을 강행한 결과에 있다. 그런데 담뱃값 인상은 물가를 비롯해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정치적으로 관철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또 담뱃값 인상은 건보와 국민건강 증진사업에 사용되는 건강부담금이 인상되기 때문인데, 이런 사업들은 국가가 세금으로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흡연자를 봉 취급해 그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국민건강 부담금과 같은 부담금에 대해선 매우 엄격한 요건 아래서만 합헌성을 인정하고 있다.

수입을 늘리는 것이 여의치 못할 때는 새나가는 곳을 틀어막고 씀씀이를 줄여 수지를 맞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건보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건보료나 담뱃값을 올린다는 안이한 발상에서 벗어나 우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신규사업을 중단해야 한다. 많은 돈이 들어가는 급여 확대는 최근 도입 논의 중인 민영 건보가 담당토록 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건보 운영에 비효율성과 방만함은 없는지 철저히 감독하고 점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건보는 병이 들고 이를 지탱하는 국민은 더욱 골병이 들 것이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공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