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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미얀마 오체영특파원 제4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새정부 월내 구성하라” 학생들 급선회/“선거 압승한 이상 권력은 국민의 것”/아직도 학생 2천4백명 정글서 투쟁
버마총학생연맹(ABFSU)의 지도부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선에서 승리한 민족민주연맹(NLD)이 이달중으로 새로운 의회를 구성,군부로부터 정권을 이양받고 새정부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들이 자신들의 대표자를 뽑은 이상 국가의 권력은 현재의 의회나 군사위원회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원만한 민정이양을 위해 군사정권의 태도를 주시하겠다는 지금까지의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방향전환을 한 셈이다.
학생들은 지난번 총선에서 NLD가 군부를 누르고 압승을 거두는데 주요한 역할을 해냈기 때문에 군사정권에 대해서는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한편으로는 침묵하고 있는 다수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효과도 병행될 전망이다.
여느 독재정권,특히 군사독재정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일이지만 미얀마 대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투쟁은 그 규모와 방법에 있어 극한 양상을 띠어 왔다.
지난 88년 9월 군사정권의 쿠데타 이후 학생들은 미얀마­태국 국경지대로 피신,카렌족 등 소수민족 게릴라와 합세,무장투쟁까지 불사했다.
한때 그 수는 무려 8천명에 달했다.
그러나 말라리아등 질병과 영양실조로,또는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숨져 그 수는 줄어들고 있다. 미얀마정부에 협조적인 태국 정부군에 붙잡혀 미얀마로 강제 귀국당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7일 ABFSU 임시의장인 쿠쿠지군의 안내로 양곤시 변두리의 비밀아지트에서 만난 메뢰군(26ㆍ랑군대)은 현재 게릴라로 활동중인 학생수가 약 2천4백명 정도라고 일러 주었다.
메뢰군은 지난 88년 랑군대 3학년에 재학중 9월18일 쿠데타가 일어난 다음날 양곤을 떠나 태국 국경부근 디버브캠프로 들어갔다.
메뢰군은 동행한 학생들과 함께 카렌족과 합류,그곳에서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받았다.
「학생 게릴라」들은 길도 없는 정글생활중 적지 않은 수가 질병과 영양실조로 숨졌다.
캠프생활중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동료인 마무조제군(랑군대 심리학과 2년)의 전사를 겪기도 했다.
메뢰군은 태국 정부에 의해 지난해 1월 붙잡혔다가 미얀마군 보안대에 넘겨져 강제송환됐으나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돼 석방됐으나 현재도 당국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군당국이 학생들에게 고문을 가했느냐는 질문에 『실전에 참가한 학생들은 고문등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이같을 사실을 꺼내기 조차 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얀마 군사정부는 정글에 들어가 있는 「학생게릴라」들에게 정부군과의 전투등 「불법행동」을 더이상 하지 말것을 권유하며,단순 도피일 경우는 처벌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있으나 학생들은 이를 거부,군사정부의 선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메뢰군은 현재 양곤시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인 사우스 오를라파로의 비밀아지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밀아지트는 큰길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빈민촌의 허름한 목조건물.
4평 남짓한 작은 방의 한쪽벽에는 지난 20년부터 전해 내려오는 ABFSU의 깃발이 걸려 있었고 아웅산장군의 학생시절 사진도 붙어 있었다.
ABFSU의 상징 깃발에는 붉은색 바탕에 「싸우는 공작」이 원을 꿰뚫고 지나가는 그림이 그려 있었다.
붉은색은 용기,원은 단결을 뜻하며 공작은 옛날 버마왕조때부터 「태양」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며 「싸우는 공작」은 태양을 향한 전진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메뢰군은 『NLD가 선거에서 승리를 했지만 순조로운 민정 이양의 관건은 결국 SLORC에 달려 있다』고 현재의 정국을 분석하며 『하루빨리 민주정치가 이뤄져 자신은 물론 아직도 태국국경지대 정글 속에 있는 학생들이 귀가,학업에 다시 전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악취가 심하게 나는 4평짜리 비밀아지트가 마음의 휴식처라는 메뢰군의 푸념에서 미얀마의 현주소와 험난한 민주화의 길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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