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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총학생련의장 1문1답/오체영특파원 양곤서 제3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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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정이양 미룰땐 사생결단”/정치보복은 결코 없을 것/파탄직전 경제 수습이 새정부 중대 과제/70년전통 「학생련」독립투쟁 선봉역 담당
30년만에 처음 실시된 미얀마 다당제총선에서 야당인 민족민주연맹(NLD)이 압승,민정이양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나라 중요정치세력중의 하나인 버마총학생연맹(ABFSU)의 활동이 두드러져 관심을 끌고 있다.
ABFSU는 48개 학생단체의 총연맹으로 영국식민지시대인 1920년 창립,우누 전총리,독립영웅 아웅산이 의장을 지내는 등 수많은 정치인을 배출한 뿌리깊은 단체다.
ABFSU는 대영ㆍ대일투쟁의 선봉적 역할을 담당,버마독립의 초석이 됐으며 지난 88년 민주화시위를 주도하는 등 현재 미얀마에선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ㆍNLD와 함께 3대 여론형성집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ABFSU는 지난 88년 현정부의 군사쿠데타후 불법단체로 규정됐으며,민 쿼나잉의장의 구속후 현재는 랑군대 정치학과4학년인 쿠쿠지군(29)이 임시의장을 맡고 있다.
ABFSU는 NLD와의 공식관계를 부인하고 있지만 선거기간중엔 산하조직으로 NLD조직인 청년회를 통해 유인물배포등 많은 지원을 해 아웅산 수키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는 지난 6일 양곤시 세고단로 NLD사무실에서 쿠쿠지군을 만났다.
갸름하고 검게 탄 얼굴,1m75㎝ 키의 쿠쿠지군은 국립기술전문대학과 HGP대(법과대)를 마치고 다시 랑군대에 입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쿠쿠지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대뜸 『남이냐 북이냐』고 묻고 지난 83년의 아웅산묘지 폭파사건을 얘기하는 등 관심을 표명했다.
쿠쿠지는 『이번 총선은 민의를 그대로 반영했다. 국가법질서회복위원회(SLORC)는 소수파에 불과하다. 이제 즉각 의회를 구성하고 헌법을 제정,민간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초엔 선거를 보이콧하지 않았던가.
『선거전에는 야당인사 구속,가택연금등 정치탄압이 심했다. 그러나 선거는 유일한 의사표시방법이었다. 따라서 선거에 참여키로 결정,NLD선전물을 만들어 배포하고 가가호호 방문,NLD에 투표하라고 요구했다.』
­선거결과에 만족하는가.
『선거는 매우 자유롭고 공정하게 실시됐다.』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어떻게 보는가.
『빠른 시간내에 의회구성,헌법제정,민간정부수립이 돼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SLORC와 대화,협상할 것이다.』
­학생들이 SLORC의 즉각적인 정권이양을 요구,시위를 벌일 것이란 얘기도 있는데.
『시위계획은 없다. 지금은 야당이 대승했으며 의사표시방법이 있다. 지난 88년 버마사회주의계획당 1당체제하에선 시위밖에 의사표시방법이 없었다.
당시도 평화적인 시위를 했으나 군인이 총을 쏴 사태가 악화됐다. 따라서 지금은 기다릴 때다. 그러나 SLORC가 빠른 시간내에 정권이양을 하지 않으면 그땐 사생결단을 내더라도 대중시위를 벌일 것이다.』
­SLORC내 일부강경파들은 지난 88년 유혈진압에 대해 피해가족들이 보복할 것이 두려워 정권이양에 주저한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인가.
『그것은 버마인을 모르는 얘기다. 우리는 불교인으로 반대한다. 부처는 현세에서 죄를 진 사람은 내세에서 벌을 받는다고 말씀하셨다.』
­미얀마의 최대문제는 무엇인가.
『파탄직전의 경제다. 석유ㆍ티크나무등 부존자원이 많지만,네윈의 「버마식 사회주의」에 의한 폐쇄정책때문에 최빈국이 됐다. 앞으로는 외국에 더욱 문호개방,낙후된 기술개발을 서둘러야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NLD마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자는 기자의 요구에 그는 한사코 이를 거부했다.
그는 『NLD는 합법적이며 ABFSU는 아직 불법단체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서로 공식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는 인상을 SLORC등 외부에 주고 싶지 않다』고 설명한다.
아직도 시내 곳곳에 흐르는 군사정부에 대한 두려움과 한치의 꼬투리도 잡히지 않으려는 조심성을 엿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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