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소련을 얼마나 아나(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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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소 정상회담이래 과열된 분위기가 점차 가라앉으면서 대소접근의 신중론과 「우리는 상대방을 너무도 모르고 있다」는 자성론이 일고 있다.
소련내의 수많은 연구소와 연구원들에 의해 앞뒤를 다 재고 다가온 소련에 비해,80여년만에 맞게된 낯선 국가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초보단계일 뿐 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이런 변화의 분위기속에서 소련에 보다 근본적으로 접근하고 우리 말ㆍ우리 문화를 바르게 전달코자 하는 최근 몇몇 움직임은 중요한 의미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부가 대소 문화교류위원회 및 소련문화연구소를 설치키로 했고 시베리아 유적 공동발굴계획이 협의중이며 문교부가 수교에 대비한 한글회화독본과 한국역사책을 제작ㆍ전달하겠다는 움직임은 비록 늦었지만 서둘러 해야 할 우리의 당면과제라 보고 이의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추진을 촉구코자 한다.
경협과 수교에 앞서 상대방 국가와 민족의 역사ㆍ종교ㆍ민속ㆍ언어 등에 관한 총체적 문화인식은 반드시 갖춰야 할 선결요건이다. 그 인식에 근거한 정치ㆍ경제적 접근방식이 아니라면 결과는 거듭되는 시행착오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선 과연 소련이란 어떤 나라이고 그 민족은 어떤 문화적ㆍ역사적 환경속에서 살아왔나 하는 종합적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대영제국의 식민지 경영을 위해 왕립인류학회가 존재했고 일본이 합병이전에 민속학자를 조선에 파견해 우리의 문화를 속속들이 조사했던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미 소련이 우리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거래를 시작한 이상 우리도 기왕 늦었지만 보다 치밀하게 이에 상응한 소련문화연구가 있어야 함을 정부는 인식해야 한다.
문화연구나 인식은 예술문화의 교류로만 끝날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양국 문화예술의 피상적 교환이 아니라 상대문화의 본질을 파악,종합적 연구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소 문화교류위원회가 역사학ㆍ사회학ㆍ문화인류학 등 인문 사회과학분야 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은 그 연구의 방향이 피상적인 예술교류가 아니라는 점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부분 위원회가 지금껏 그러했 듯이 문제가 발생하면 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형식상의 세미나만 몇번 열면 할 일을 다했다는 식의 행정편의주의로 끝나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비록 그 숫자가 적다 할지라도 관계전문가들을 가능한 한 한 자리에 모이게 해 전공분야별로 집체연구를 시키고 양국간의 교류를 통해 미비점을 보완하는 종합적이고 단계적인 연구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민간연구단체는 그들 나름대로 상호연계해 상대국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공동노력을 지금부터라도 벌여야 할 것이다.
청와대안에 북방정책대책반과 소련대책반이 설치되었다지만 구성원 대부분이 외교와 경제전문가들로 되었을 것이다. 그 대책반이 장기적이고도 정확한 안목을 지니고 현실외교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그 하부구조에는 종합적인 문화연구집단의 심층적인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협과 수교를 뒷받침할 대소 문화연구의 적극적 추진을 정부와 민간단체가 더욱 활성화시키는 일은 목전의 관계개선작업의 장기적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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