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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과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중앙일보

입력

북핵이 국제정치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떠오른 시점에 한국인인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것은 한민족에게 천우신조일까?

지난 3일 북한 외무성은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유엔에서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내정했다.

반기문 장관은 현지시간으로는 2일, 우리시간으로는 3일 유엔 사무총장 4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차기 사무총장으로 사실상 확정됐다.

유엔 안보리는 9일 본 투표에서 사무총장 후보를 최종 확정한 뒤 유엔 임시총회를 소집, 차기 유엔총장을 공식 선출한다. 지난 30년간 유엔 총회에서 사무총장은 '박수 승인'을 했기 때문에 유엔 총회 승인은 통과 의례에 불과하다.

정식 취임은 내년 1월 1일 이지만 9일 본 투표에서 차기 사무총장으로 최종 확정되면 업무 인수인계를 시작한다. 최대 현안인 북핵문제는 떠나는 코피 아난이 아닌 반장관이 맡게 되는 것이다.

반장관은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반장관은 4차 예비투표 직후 한국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인으로서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 때문에 남달리 깊은 이해가 있다. 한반도 평화안전, 남북한 화해 협력, 북한 핵문제의 조속한 평화적 해결을 촉진시킬 수 있도록 사무총장에게 주어진 권한과 위임을 최대한 활용 하겠다" 고 밝혔다.

반장관은 지난 9월 1일 관훈토론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할 생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럽 일각에서 북핵문제가 최대현안인 시점에서 한국인이 유엔 사무총장을 맡으면 공정성을 헤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지만 북핵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장관의 인선은 무난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국도 부시 대통령이 "적절한 사람(Right man)"이란 말로 지지를 표시했었다.

그러나 반장관의 행동반경이 그다지 넓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유엔이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한지 오래기 때문이다. 2003년 대이라크 결의안 채택 당시 미국은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다수 의견에도 대이라크 결의안을 이끌어 냈다. 미국의 이라크 개전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파괴였다. 그러나 이라크에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음이 전후에 확인됐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의 대이라크 전을 반대했지만 미국은 상임이사국인 중국에게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 운동 저지를 묵인하는 당근을 제시하며 결국 대이라크 결의안을 관철해냈다.

당시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은 부시 행정부의 대이라크 강경책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전세계 반전여론을 이끌었다. 그 때문에 아난 총장과 부시 행정부는 결별했다. 그 후 미국은 유엔 개혁 카드를 들고 나오며 아난 총장을 몰아내려 했다. 아난 총장은 이에 맞서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북핵문제는 이라크 전쟁과 다르다.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어서 다수가 반대했지만 대북제재는 대부분 찬성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상임이사국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중국마저 한반도가 핵무장을 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따라서 반장관이 북핵문제 합의안을 도출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의 대북결정이 우리 민족의 미래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때, 또는 미국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관철될 때, 반장관이 코피 아난 현 사무총장처럼 미국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단'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의 역사적 의미이기 때문이다.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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