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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만들기] 35. 도로·주차장 건설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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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으로 양택식 시장이 물러나고 1974년 9월 부임한 구자춘 시장이 10월 어느 날 아침 간부회의에서 도시계획국장이던 내게 물었다.

"손국장은 도시계획국장을 맡은 지 몇년쯤 됐나."

"한 3년쯤 됐습니다."

"3년 동안 주차장을 몇 개나 만들었소?"

"한 개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시계획국장 3년에 주차장을 한 개도 안 만든 것은 역적이야."

넓이 6.4㎢ 정도의 서울 도심의 도로망은 방사선형이다. 따라서 차량이 몰려들면 순식간에 도로가 만원이 된다. 도심 주차장을 늘릴 필요없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도심에 있는 건물을 모두 헐어버리고 그 자리를 주차장으로 만들더라도 6만대 정도 밖에 주차할 수 없어 교통난 완화에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나의 주장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뚱딴지 같은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내가 도시계획국장에서 물러난 다음해인 75년 서울시는 주차장시설을 의 무화하는 내용의 주차장법 시안을 건설부에 건의했다. 당시 시는 주차공간.도로공간.녹지공간 등 3대 공간 확충을 시정 목표로 내세웠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말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김현옥.구자춘.정상천씨 등 세명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매우 젊은 시절부터 군장교 또는 경찰간부로서 운전기사가 모는 지프를 타고 다녔고, 시장 때 자신들이 탄 승용차가 교통 정체로 인해 거북이 운행을 하게 되면 도시계획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 것 등이다. 김현옥 시장은 육교와 지하보도를 건설에 열성적이었다. 사람들이 이들 시설로 다녀야만 차량 소통이 원활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구자춘씨는 시장이 되자마자 "지금까지의 서울 도시계획은 잘못됐다. 내 손으로 그것을 뜯어 고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서울시정을 맡은 동안 서울은 걷기 힘든 도시로 바뀌어 갔다.

4년4개월간 재임한 具시장의 업적은 '도로와 주차장 건설'이었다. 서울시내에 도로 39개(7만8천2백16m)를 신설했다. 기존도로 40개(4만5천6백18m)를 확장했으며, 비포장도로 94개(3만1천1백59㏊)를 포장했다. 또 4개의 한강다리(천호대교.성수대교.성산대교.잠수교)와 2개의 터널(남산3호.금화)을 뚫었다.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독립문의 이전이다. 사직터널과 성산대교를 잇는 성산대로 건설을 위해 사직터널과 금화터널을 연결하는 고가도로를 신설해야 했다. 그런데 고가도로 바로 밑에 독립문이 있었던 것이다.

독립문은 1896년 독립협회에서 세웠다. 과거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 성금으로 건립한 문이다. 76년 11월 2일자 중앙일보에는 '원형보존이냐 옮길 것인가, 성산대로에 걸리는 독립문'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문화계 인사를 비롯, 독립문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들과 도로 건설을 위해 옮겨야 한다는 具시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具시장의 승리로 끝났다. 결국 독립문은 해체돼 원래 자리에서 서북쪽으로 70m 정도 옮겨져 복원됐다. 당시 많은 공무원들은 '높은 건물과 넓은 도로'를 도시행정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도심 주차장을 건설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시정 목표가 바뀌고, 문화재 보호 주장에 막혀 미국대사관 이전 계획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 됐으니, 정책 방향도 세월에 따라 크게 바뀔 수 밖에 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정리=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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