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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극한의 땅' 남극 1400㎞ 대장정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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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죽음이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워낙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 보니 보통 사람들보다 내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 원정에서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세계에서 두번째, 아시아인 최초로 히말라야 8천m 고봉 14개와 7대륙의 최고봉을 오른 산악인 박영석(40)씨가 오는 31일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 달성을 위해 남극점 원정을 떠난다. 산악 그랜드슬램이란 히말라야 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등정, 그리고 지구 남.북극점 도달을 뜻하는 것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번 원정에서 탐험대장을 맡은 朴씨는 이치상(38).강철원(35).오희준(33).이현조(31)씨 등과 함께 칠레 최남단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경비행기로 남극 대륙의 패트리어트힐에 도착할 예정이다. 朴씨는 "원정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대략 내년 1월 말 남극점에 발을 디딜 것"이라며 "이번에 남극점 원정에 성공하면 2005년 2월께 북극점을 탐험해 세계에서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원정 중간에 지원을 전혀 받지 않기 때문에 이번에 무게가 1백50㎏인 썰매와 60일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식량과 연료를 가져갑니다. 남극대륙 해안선에서 남극점까지의 거리는 약 1천2백㎞입니다. 5천m가 넘는 산을 두개나 넘어야 하는 만큼 실제 거리는 1천4백㎞ 가량 될 겁니다."

이번 원정은 매우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평균 기온이 영하 55도나 될 만큼 남극이 세계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데다 영하 30~40도 기온에서 초속 10m 이상으로 부는 찬바람을 일컫는 블리자드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朴씨는 지난 3월 북극점 원정 때 60여일간 전체 원정길의 절반이 넘는 4백20㎞를 걸었지만 원정대의 귀환을 도울 항공사가 나서지 않아 중도에 포기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북극점 탐험 때 유빙(流氷)과 추위 때문에 무척 힘들었어요. 유빙에서 자다가 10㎞ 넘게 떠내려간 적도 많았고요. 입고 있는 옷이 완전히 얼어 벗는 게 힘들었고, 추워서 2분도 채 서 있지 못할 정도였고요. 당시 가장 무서운 것은 자꾸 나약해지려는 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자연 앞에서 너무나도 초라한 존재입니다."

글=하재식,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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