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집착|건강보호소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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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노동부가 하루 6시간, 1주 34시간으로 근로시간이 제한되는 유해·위험작업의 범위를 축소한것은 근로자들이 노동시간단축은 물론 유해·위험수당지급을 요구할수 있는 법적근거를 잃게 된다는데 무엇보다 문제의심각성이 크다.
노동부는 노사합의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기존사업장의 근로시간단축및 수당지급등 종전의 근로조건을 저하시킬수 없도록 법적 장치를 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지금까지 법정근로시간 34시간을 지키지 않고 유해·위험수당도 지급치 않았던 사업장과 특히 신설사업장에서는 유해·위험수당지급등을 요구할수 없는 근거를 제공하는 계기가될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수당을 지급해 왔던 기존 사업장에서도 법개정에따라 사업주가 1주 44시간 근로시간외에12시간의 연장근로를 요구할 수 있게 됐고, 때로는 경영사정등을 이유로 위험수당지급등 기존근로조건의 변경을 시도할 것도 예상돼 앞으로 노사협상과정에서 근로조건을 둘러싸고 마찰이 클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유해화학물질등으로 인한 직업병등 신종재해가 증가되는 실태를 감안하면 유해·위험작업을 잠수·잠함작업 한가지로 못박아 놓은 것은 근로자들의 노동권익을 크게 제한한 조처라는 지적이다.
이에 못지않게 심각한문제는 근로자들의 건강보호에 대한 실효성 여부다.
노동부는 시행령 개정취지를『그동안 사업주들이 작업환경에 대한 개선노력을 기피한채 작업시간단축이나 유해·위험수당등으로 보상하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봤으나 앞으로는 기술적으로 작업여건을 변경할수 없는 잠수등 고기압작업을 제외하고는 작업환경개선을 강력히 추진하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밝히고있다.
또 9종은 유해· 위험작업에서 제외됐다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과 그 시행령에따라 실질적으로 유해·위험한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주요대상이 된다는 노동부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노동전문가들은 「건강을 팔아 돈을벌어온」 것을 허용한 종래의 산업안전보건정책을 시정한다는 취지에는 적극 동조하면서도 노동부가 개정시행령을 마련하면서 근로시간에 집착한나머지 실질적으로 근로자들의 건강을 소홀히 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유해·위험작업환경의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현실이 뒤따르지 못할 취지가 됐다는 것이다.
노동과 건장연구회 공동대표 양길승씨(41·성수의원 원장)는 『유해·위험작업에 대해 근로시간을 줄여 대처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작업환경이 열악해 작업시간 단축과 수당등으로 보상해봤던것』이라며 『기업이 아직도 작업환경개선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않고 있으며노동부 또한 인력부족등으로 감독을 제대로 할수없는 실정에서 유해·위험작업을 대폭 축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일』이라고 말했다.
작업환경개선에는 많은비용과 시간이 필요한데 개정시행령이 이같은 현실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가개정시행령을 이같이 마련한 배경에는 근로자들이 유해·위험작업규정을근거로 위험수당지급등을 요구하며 노사분규를 일으키는 일이 적지 않아 분규의 소지를 제거하고, 유해·위험작업을 현행대로 10종으로 할 경우7월부터 하루 6시간근로가 의무화돼 작업시간이부족하다는 사업주측의 애로를 해소해 주려는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어 근로자 복지보다는 행정목적 달성에 치우친 편의주의적 노동행정이라는 비난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는 불과 3개월전 시행령개정안을 입법예고할 때만 해도 현행10종을 그대로 유해·위험작업으로 두기로 했었기때문에 이같은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호소력있게 들리고 있다.
새 시행령은 6월초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7월13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나 이같은 노동계의반발에따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이덕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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