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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수단이다/진덕규(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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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늘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실험장이 되고 말았다. 그러한 실험은 민중에게는 고통을 가져다주지만 직업적 정치가들에게는 이권의 장터처럼 거래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를 떨쳐버리지 못한 채 어떤 가능성에 목메어 하고 있다. 거리에서 쉽사리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구호는 그것에 대한 갈망을 표출하고 있다. 민주주의만 이룩되면 당장이라도 살기좋은 세상이 닥쳐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목적 아닌 삶의 과정
그러나 민주주의는 우리에게 하나의 환상으로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는 희망이고 열망일 수는 있어도 현실일 수는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는 열정이 민주화라는 행동적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화의 바람은 거칠 것 하나없이 소용돌이치면서 우리들이 그처럼 아껴왔던 그 모든 것을 그것을 위한 제물로 사용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목적일 수 없다. 그것은 삶의 한 과정일 뿐이며,일상적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할 그 민주주의가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는 목적의 자리에 올라서게 되었으며,마치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처럼 주장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맹목적일 정도로 그것에 매몰되는 우리들 자신의 관념의 허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정부일 수는 없다. 그것은 그 어떤 삶의 완벽한 가치실현의 한 과정을 이룩해가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가지 이상한 사실은 어느 누구도 명확하게 민주주의가 이루어지고난 이후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민주주의만 되면 다 잘될 것이며 마치 요순시대와 같은 이상향이 올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가 이룩되면 범죄도 없어지고 직업적 정상배의 지저분한 모습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억압과 불평등과 비인간적 소외도 극복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처럼 민주주의는 만능의 처방전인가. 이러한 물음은 아마도 가장 본질적인 물음의 하나일 텐데 그것에 대한 응답은 유보된 채 민주주의를 이룩하려는 민주화의 몸부림만 치열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제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것 때문에 너무 심한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
각자 편할대로 자기나름의 민주주의를 생각하다보니 그것은 단지 「좋은 정치」라는 지극히 편리한 개념으로 정착되고 말았다. 특히 우리가 배웠던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인 「국민을 위한,국민에 의한,국민의 정치」라는 말 속에 우리들 자신을 매몰시키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정치가가 수사학적으로 표현했던 그 정치적 구호를 우리들은 민주주의의 본질로 받아들였으니 여기서부터 잘못은 시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민주주의가 이룩되면 지배 복종도 소멸되고,모두가 똑같이 잘 살게되는 평등한 사회가 될 것처럼 믿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정치의 현실이 깊은 좌절을 가져다주면 줄수록 더욱더 심화되었다. 마치 어지러웠던 시대일수록 우리의 조상들이 정감록을 펼쳤고 비기도참 사상에 매몰되었던 지난날의 역사처럼 말이다.
○차선으로 하는 정치
민주주의는 결코 해방일 수도 없고 완전한 평등은 더더구나 아니다. 어느 의미에서 그것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그것을 고쳐가려는 정치제도다. 가지지 않은 자의 열망을 해결하면서 가진 자의 존재도 긍정해주는 그러한 정치가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주의가 가진 자의 현실만을 강조하고 그들의 이익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것은 한낱 부르좌 민주주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가하면 가지지 않은 자의 열망만을 전제로 하여 그들에게만 정당성을 부여하는 민주주의라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범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느 한편에 치중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함께 최선은 아닐지라도 추구될 수 있는 차선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정치,그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는 극단적인 정치적 상황에서는 싹트지 않는다.
지배자의 자기이익을 전제로 하는 극단적인 사고,영속적인 권력장악을 시도하기 위해 행해지는 일체의 비합의적 작위,기댈곳이 없다는 한가지 사유로 행동의 순수성에 매달리는 소수자의 결단등이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와는 너무나 먼거리에 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타협의 산물이며,중용의 정치이며,통합의 이념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의 생각이 함께 담겨져야 한다.
물론 오늘 민주주의도 그 실천적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다양한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지구의 어느 곳에서는 극단적인 전체주의와 연관된 경우도 없지않다.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민중혁명을 의미하는 사회도 적지않다. 가장 과격하고 급진적인 사상으로 민주주의를 정의한 논리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과 사상이 모두 적실성을 가진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한 적실성은 역시 시대와 상황이 가져다 주는 조건에 의해서 얻을 수 있다. 결코 어느 사상가나 실천가의 의지만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허상 만들지 말아야
물론 한 시대가 놓여있는 상황이 민중혁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박함에 놓여 있다거나,부르좌 민주주의가 천민민주주의의 천박함에 젖어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황규정에 대한 인식의 공감대가 이루어진다면 그때부터 민주주의는 혁명의 불길로 타오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왜 이 시점에서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가는 우리가 열망하는 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바르게 바라보고,그것을 위해 오늘의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일체의 정치적 적절성도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지배자들의 반민주성이나 우리들 피지배자들의 탈민주성도 결국 민주주의를 허상으로만 남아 있게 하기 때문이다.<정치학·이대법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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