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베트남서 되새겨본 조국통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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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백마부대원으로 파병, 베트남 패망과 함께 마지막 귀국선을 탄지 17년만인 얼마전 무역상사원으로 베트남을 다시 찾았을 때의 감회를 잊을 수 없다. 이제는 호치민시로 이름이 바뀐 사이공은 옛 추억을 되살릴 만큼의 자취는 간직하고 있었지만 너무나 많이 변해 반가움과 서운함이 교차했다. 특히 백마 마크도 선명한 장갑차가 아직도 벌판에 그대로 남아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제일 서운한 점은 우리 부대가 정성들여 지어준 위락시설이 지정분한 빈민 합숙소로 바뀐 것과 땀흘려가며 건설한 2번 국도의 아스팔트가 다 패 비포장도로처럼 되어버린 것이었다.
또한 다낭으로 가는 길목에 서 본 농촌이 낙후상, 어린이 놀이터로 변해 버린 철로, 고철과 다름없는 버스 등은 실망감을 더해 주었다.
사회주의체제의 비능률성과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베트남의 이러한 퇴락상을 보니 인민해방을 외치며 싸운 결과가 이런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고 근원적 변화를 선택한 도구사회의 고민이 이해되기도 했다. 주민들의 생활형편도 베트남전쟁 당시만 못했고 사회 전반적으로 활기가 없이 맥빠진 듯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전시임에도 불구하고 한창 번성하던 불교사원과 천주교회의 교세가 형편없이 쇠락해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었다. 국가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도 연일 반정부데모로 지새우던 승려·신부·대학생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하고 있는지, 당시의 격렬하던 가두시위와 분신 자살하던 승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귀국길의 하늘에서 내려다 본 한반도는 베트남에 비해 훨씬 풍요롭고 평화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눈길을 북쪽으로 돌리면 개혁바람에 대한 반작용으로 껍질을 더욱 각질화한 채 안으로만 움츠러드는 북한과 그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갈 북녘동포들이 생각나 우울했다. 베트남은 물론 캄보디아·라오스까지 폐쇄했던 문을 여는데 유독 북한만이 소련인을 추방해가면서까지 세습독재의 아성을 지켜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남북동포가 얼싸안을 통일의 그 날을 위해 우리 모두 진력해야겠다.
박 준 (신광무역(주)기획실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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