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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쓴 편지] 계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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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면

그려, 나 계백이여. 시방까정도 쩌그 군대 갈 적이 그 훈련소에서 그대들이 목청껏 노래하는 그 백제의 계백이란 말이제. 긍께 시방이 2003년인께 나가 황산벌에서 거시기 해분지 한 1천3백여년 만에 나를 다시 생각혀주니 참 반갑소.

"호랭이는 죽어서 가죽을 냄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냉긴다"고 안혔소. 자고루 옛말 틀린 벱은 없는 것이여. 뭐시여? 황산벌의 비장한 장군 계백이 사투리를 써서 쪼까 거시기하다고라? 아따, 표준말이 뭐시다냐. 나의 말은 모도 다 우리 백제 수도 사비성 안서 가운디쯤으로 사는 백성들이 시방 쓰는 정통 백제 표준말인디, 아, 긍께 신라눔들이랑은 나랏말쌈이 여그랑 솔찮이 달라부러서 이해가 안되는 거 갖고 거시기 허덜말어. 자꾸 그래싸믄 확 그냥 보성 벌교 아들을 불러갖고 사투리 욕으루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팅께.

근디 듣자 항께 시방도 넘의 전쟁에 갑네, 또 머냐, 쩌그 고구려쪽 나라서 솔찮이 거시기헌 대포를 맹글어갖고 코쟁이들허구 워쩌네 함서 말들이 많은가분디, 나가 5천 결사대를 데리고 우리 백제의 뭐시기를 지켜본 사람으루다가 한마디 하것소.

그려. 나는 이름을 냄기것다고 그 꺼죽 냉기겄다고 처자식 거시기 해불고 전장에 나왔제. 그라고 신라눔들을 뭐시기 헐 때꺼정 안 벗겄다고 갑옷을 거시기해 불고 싸웠잖여. 나는 고것이 군인의 거시기라고 아직도 믿고 있소. 나의 행동에 쪼매도 후회는 없당께.

근디, 나가 김유신이한테 져분 건 뭐여. 그 숭악헌 신라 눔들은 이 짝의 '거시기'를 해독해 부런는디 나는 김유신이 씨부렁대던 "아무리 그래싸도 지 팔꿈치 지가 못 핥는 기 사람이다" 요것이 뭔 뜻인지를 알아 듣덜 못했잖는가. 나가 그 '겁나게 더워부렀던' 날 김유신의 칼에 죽음서 허벌나게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침서 쪼매 감이 오드만.

내 칼에 거시기헌 내 마누라가 그랬제. "호랭이는 가죽땜시 뒤지고 사람은 이름땜시 뒤져분다"꼬. 김유신이 그눔은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기 아이라 살아 남는자가 강한기라"고 혔다고. 숭악헌 놈. 그려 나 그 꺼죽 냉기겄다고 거시기혔지만 시방은 김유신이 이름 석자루 남어서 자손만대 창창헌디 나 계백이는 성씨도 잊어불고 요로콤 이름으루만 남았어라.

나가 내 새끼 쳐죽여감서 얻어야 혔던 거시기는 뭐였다냐. 그 꽃겉은 나이에 죽을라고 뎀벼든 신라 화랑눔 관창이랑 반굴이 그렇게꺼정 바랬던 "역사에서 뜬다"는 것은 뭐였냔 말이지. 그려. 고것이 나가 핥지 못헌 내 팔꿈치가 아닌가 싶구만.

나가 죽기 전으라도 쪼만한 그놈 '거시기'를 돌려보낸 것은 혹시라두 나의 생각이 틀릴지도 모릉께, 이 거시기들만 뭐시기 해부는 이 전쟁서 이름은, 꺼죽은 못 냉궈두 지 인생을 냉구는 것이 더 거시기 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겨. 그려. 워떤 놈두 꺼죽땜시 이름땜시 니 뒤지라고 말할 거시기는 없는 거여. 워떻게 장군이 그런 소리를 한다고라? 월래, 그랑께 시방까정도 우리 때랑 똑같이 쌈질을 해대구 있는 니들이 한심한 겨.

이윤정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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