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불로 맺은 '한·미 의남매' 40년만에 만났다

중앙일보

입력

이창순(왼쪽)씨가 40년만에 상봉한 ‘미국 오빠’ 빅터 칸씨 부부와 함께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한국의 동갑내기 고아 소녀를 위해 매달 자기 용돈을 보낸 벽안의 미국 소년이 중년이 돼 40년만에 그 소녀를 만났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거주하는 빅터 칸(49.광고업)씨는 9살때인 1966년 부모에게 용돈을 달라고 졸랐다가 어머니로 부터 "그 돈을 가난한 나라의 아이를 돕는데 쓰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칸씨가 '아주 좋은 생각'이라며 환영하자 어머니는 '기독어린이기금'(CCF)의 가난한 외국어린이 돕기 프로그램에 연락 기왕이면 칸과 동갑내기 아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곧 칸씨에게는 서울 응암동의 고아원에 있던 9살 소녀 이창순씨의 사진이 전달됐으며 그는 사진을 갖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한국에 새 여동생이 생겼다"며 뽐내고 다녔다.

칸씨는 그후 매달 10달러씩 10년간 한번도 거르지 않고 돈을 보냈으며 이 기간 두 사람은 40여통의 편지도 주고 받았다.

그러나 칸씨와 이씨가 모두 성인이 되고 각자 가정을 꾸리면서 이들 의남매의 인연은 끊어지는 듯 했다.

그러던중 지난 2000년 평소 한국 여동생 얘기를 자주 들었던 칸씨의 부인 캐시가 이씨의 옛주소인 충남 서천으로 편지를 보내 보라고 격려했다. 그의 편지는 이씨의 주소가 바뀌었음에도 워낙 작은 시골이어서 배달될 수 있었다. 이씨는 즉시 영어로 편지를 써서 답장을 보냈다.

칸씨는 "창순이 영어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이메일 주소까지 갖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면서 "창순의 편지를 다시 받던 날은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후 두사람은 정기적으로 이메일을 교환했으며 전화 연락은 물론 웹캠으로 화상 대화도 나누게 됐으며 칸씨는 자연스럽게 이씨를 미국으로 초청했다.

이씨는 쌀과 김치, 김 등을 선물로 싸가지고 지난 20일 피츠버그 공항에 도착, 40년만에 미국 오빠를 만났다.

처음 만난 순간, 칸씨는 “창순이 사진 보다 훨씬 이뻐서 몰라봤다”는 칸씨의 말에 이씨는 “마치 엊그제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 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고 화답했다.

칸씨는 5박6일 동안 이씨를 집에 머물게 하면서 시내 관광도 시키고 주말에는 이웃, 친지 30여명을 불러 모아 5시간 동안 파티도 열었다.

칸씨 부부는 너무 정이 들었던지 지난 25일 공항에서 이씨와 헤어지면서 서로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이 행복했다”는 이씨는 곧 칸씨 부부를 한국으로 초청할 계획이다.

칸씨는 “어렵게 고아원에서 자란 창순이 항상 명랑한 것을 보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면서 “창순을 미국에서 다시 보게 되면서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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