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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멋살린 북장단 "외길5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유일한 판소리고법 인간문화재 제59호 김득수 옹의 신바람나는 북장단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됐다. 판소리명창 박동진씨와 50여년간 단짝으로 판소리의 멋을 살려오면서 80세가 넘어도 국악무대에 서겠노라고 벌렸으나 지병을 끝내 이겨내지 못해 21일 74세를 일기로 명고수의 일생을 마감했다.
「얼씨구 좋다」 「허이좋아」 「얼쑤」등의 추임새로 소리를 받쳐주고 북으로 소리를 추겨주며 이동백·김창용·임방울·박동진·김연수·박초월·김여란·박녹주·김소희·정권진씨 등 내노라 하는 국창·명창들과 국내·외 무대에서 호흡을 맞춰온 그가 북장단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7세때 고향인 전남진도의 신청(일종의 예기조합과 같은 것으로 작고한 광대 ·예인들의 외패를 모셔놓고 제향을 지내며 국악을 전수하던 곳)을 드나들면서부터다.
12세 때는 진도 신청에 와있던 명창 이동백에게 소리도 배웠다. 15세에는 아예 짐을 뛰쳐나와 전국각지를 돌며 소리를 가르치다 서울에서 김창용 명창을 사사했다. 이어 정원섭·한성준 고수로부터 고법을 배웠다. 30년대 중반부터는 동일창극단·조선창극단·국극협단·국악사·우리국악단 등과 함께 전국을 누볐는데 이 무렵부터 북장단에 더욱 끌려 본격적인 고수의 길만 걸어온지 50여년.
흔히 「-고수 이명창」이라는 말로 고수의 중요한 역할을 표현하지만 그는 「일청중 이고수 삼명창」이라는 말로 청중과의 호흡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항상 강조했다.
서울시립국악원 악장으로 일하다 정년퇴임 후 84년부터는 국립국악원 지도위원직을 맡았으며 판소리고법의 유일한 인간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된 것은85년. 국악협회 부이사장을 3회에 걸쳐 역임했고 강덕화 씨를 비롯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북장단으로 일가를 이룬 그의 철저한 예인정신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1남3녀 중 장녀를 뺀 세 자녀가 각각 국악작곡·아쟁·가야금에 매달리고 있는 국악가족을 남겼다.
『명창 임방울선생의 묘 옆에 묻어 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그는 경기도 여주의 남한강 묘역에서 영면하게 됐다. 〈김경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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