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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곤충들의 생존 전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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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략의 귀재들 곤충
원제:For love of insects
토머스 아이스너 지음
김소정 옮김, 삼인
568쪽, 4만8000원

살아있는 모든 것의 존재 목적은 똑같다. 목숨을 부지하고, 후손을 잇는 것이다. 1957년부터 반 세기 동안 미국 코넬대 곤충학부에서 곤충생태학을 연구하고 가르쳐온 지은이는 벌레들이 이를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정밀하게 관찰한다. 이 책은 그 과학적 연구 과정을 소개하며 곤충들의 생존 전술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화학무기'다. 미국에 사는 폭격수 딱정벌레(bombardier beetle·사진)는 뜨겁고 자극적인 화학물질을 20회 이상 연속 발사할 수 있는 작은 총구를 배 끝에 달고 다닌다. 선제공격은 하지 않고 오로지 위협받을 때만 무기를 쓴다.

전략의 귀재들 곤충
원제:For love of insects
토머스 아이스너 지음
김소정 옮김, 삼인
568쪽, 4만8000원

방어만이 능사가 아니다. 대벌레의 한 종류는 새만 보면 자극적인 화학물질로 선제 공격 한다. 뜨거운 맛을 본 새들은 다음부턴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연약하게만 보이는 대벌레가 고개를 들고 살아가는 이유다.

치명적인 시안화수소산, 즉 청산가리를 쓰는 곤충도 있다. 어떤 노래기는 한 마리가 비둘기 18마리, 쥐 6마리를 죽일 수 있는 양을 보유한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이를 발사하기도 전에 두꺼비가 넙죽 삼켜버리면 대책이 없다. 뱃속에 들어간 노래기는 독성이 없다고 한다. 사람이 피해를 입으려면 노래기 100마리는 있어야 한다니 겁낼 필요 없다.

'복합화학무기'도 있다. 사막에 사는 채찍 전갈은 자극적인 아세트산이 든 분비물로 큰 쥐, 도마뱀, 새를 너끈하게 물리친다. 이 분비물에는 아세트산이 곤충이나 전갈의 갑옷에서 그냥 흘러내리지 않고 끈끈하게 달라붙는 것은 물론 속으로 스며드는 것도 돕는 카를린산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300만 년 전에 지구에 처음 등장한 생물이 이런 복합 화학 전술을 구사하다니.

놀라운 것은 고등생물에나 있을 법한 '희생'이 곤충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알약노래기는 글로메린이라는 화학물질로 천적인 거미를 마비시켜 말라죽게 한다. 하지만 이 무기가 작동하려면 잡혀먹혀야 한다. '자살공격'인 셈이다. 이 벌레는 집단 서식하기 때문에 천적 하나를 제거하면 주변의 수많은 동족이 안전해진다. 곤충의 세계에서도 이타적인 죽음이 이뤄질 수 있다!

생존전략으로 화학무기만 있는 게 아니다. 가시 달린 선인장 위에 집을 지어 안전을 도모하는 잎발노린재라는 벌레도 있다. 가시가 '핵 우산'인 셈이다.

일부 나방은 천적인 새가 싫어하는 매의 눈과 같은 무늬를 날개에 그리고 다닌다. 가짜 눈을 이용한 '기만 전술'이다. 어떤 딱정벌레는 앞날개를 배에 붙이고 뒷날개로만 날아 언뜻 보면 무시무시한 장수 말벌과 비슷하다. 줄무늬도 말벌을 닮았다. 어떤 나방은 연약한 유충 시기에 몸통 끝 부분 양옆으로 가짜 눈이 한 개씩 있어 마치 공격 준비가 끝난 벌처럼 보인다. '호가호위'가 따로 없다.

짝짓기 전술을 살펴보면 묘한 일이 많다. 짝짓기를 위해 선물 공세도 펴기도 한다. 삼홍색 얼룩보행자나방의 수컷은 짝짓기 때 파트너에게 거미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화학물질을 선물로 준다. 영양물질도 넘겨줘 체중이 10%까지 빠진다. 암컷은 그만큼 통통해진다. 수컷은 방어물질을 원료로 만든 하이드록시다나이달(HD)을 뿜어대며 암컷을 유혹한다. 암컷은 HD를 진하게 풍기는 수컷이 방어물질을 더 많이 선물할 것으로 여겨 짝짓기 파트너로 선호한다. 그럼 수컷은 파트너 선택기준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암컷과는 무조건 교미한다는 게 지은이의 연구 결과다. 원 참.

여담 한 마디. 남미에 사는 연지벌레에는 화려한 붉은색 천연염료인 코치닐이 들어있다. 스페인이 남미를 식민지로 지배할 때 금과 은에 이어 셋째로 교역량이 많았던 인기 상품이다. 지은이는 18세기 영국이 식민지에 파는 차에 무거운 세금을 매긴 것과 함께 코치닐을 지나치게 비싸게 팔아먹은 것도 미국 독립운동의 불씨가 됐다고 지적한다. 미물인 벌레도 인간 역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강조하는 지은이에게서 살아있는 것에 대한 가이없는 사랑이 느껴진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바로 그것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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