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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에 밀려 찬밥”… 볼멘 소군부/고르바초프의 군개혁주장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잇단 군비ㆍ예산 감축… 불만쌓여/“군도 변화”주장에 “반사회주의”
소련의 제2차대전 전승기념일을 하루앞둔 8일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소련 군부지도자들 사이에 오고간 가시돋친 언사는 소련 지도부에 대한 군부의 불만이 심상치 않은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 시내 볼쇼이극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연설을 통해 군은 『소련사회를 보다 역동적인 사회로 만들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에 따른 사회변화에 맞춰 개혁돼야 한다』고 강력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자리에 참석한 군부지도자들은 소련군은 국가에 충성하며 아직도 인민으로 부터 지지받고 있다고 항변하는 한편,소 연방은 현재 반사회주의 파괴분자들에 의해 붕괴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고르바초프 등 현 지도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소련 지도부와 군부간에 이처럼 노골적 불화가 드러난 직접계기는 최근 발트해 연안국가들의 독립움직임에 대해 고르바초프가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사태를 둘러싼 고르바초프와 군부와의 의견대립은 표피적 현상에 불과하다. 문제는 더 본질적인데 있다.
고르바초프와 군부는 처음부터 불편한 관계로 출발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고르바초프의 외교는 핵 억지력에 기초했던 지금까지 소련의 공격적 군사독트린을 전면 수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군사독트린이란 「적의 침략을 막기엔 충분하나 남을 공격하기엔 불충분한」 소위 합리적 충분성이론,그리고 안보개념을 비단 군사적 측면에 국한시키지 않고 정치ㆍ경제ㆍ문화까지 포함,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이른바 포괄적 안전 보장론을 말한다.
87년 INF(중거리핵전력) 폐기협정 체결,88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50만명 병력 일방적 감축선언,중소 국경 및 동유럽 주둔 소련군 철수 등은 고르바초프의 군사독트린이 현실로 나타난 것들이다.
병력수에 있어 소련군은 지난해 초 4백26만명에서 금년 1월 현재 3백99만명으로 줄었으며 금년말까지 3백76만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금년도 국방예산 또한 전년비 8.17% 감소한 7백10억루블로 돼있다.
소련지도부의 이같은 군사경시에 대해 군부가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이같은 군부의 불만을 그동안 여러차례의 군부숙청을 통해 효과적으로 컨트롤 해왔다. 특히 국방장관에 자신의 심복인 드미트리 야조프를 앉혀 그로 하여금 군을 장악하도록 했다.
그러나 야조프는 군을 완전 장악하지는 못했다. 현재 소련군부는 야조프가 이끄는 극동파,그리고 아프간 주둔 사령관이었던 보리스 그로모프 중장이 리더인 보다 젊은 그룹의 둘로 크게 나뉘어 있다.
그로모프는 소련의 현 지도부,특히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진보주의 그룹들이 국방을 무시,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소련군부가 더욱 분노하는 것은 최근 소련사회에서 일고 있는 군의 사회ㆍ경제적 지위 저하 현상이다.
국방예산의 대폭삭감으로 군에 대한 복지정책이 형편없이 줄고 있는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17만명의 군인 및 군인가족이 살 집이 없는 형편이다. 수도 모스크바의 경우 7천5백여명의 장교가 자기아파트가 없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군인들의 사회 심리적 스트레스ㆍ사기 저하 또한 큰 문제다.
특히 지난 2월 아제르바이잔 인종분규때 소련군 병사들의 과잉진압으로 현지 주민들의 반군 감정이 고조,이들이 무장을 갖추고 대항하는 등 지금까지 소련군이 자랑해오던 자부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것도 주요 요인중 하나가 되고 있다.
군부가 이같은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 지난 2월 소련군부의 고르바초프에 대한 무력시위설이다. 확인된바는 아니지만 지난 2월 일단의 소련장교들과 사관생도 수천명이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개혁정책과 지나치게 온건한 대외정책에 반대하는 무력 시위를 벌였으며,이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그후 빈에서 열린 재래식무기협상(CFE)에서 강경입장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또 지나주 야조프 국방장관을 원수로 승진시키는 등 군부에 대해 우호적 제스처를 보였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이번에도 그가 언제나 그랬듯 수세에 몰렸을때 다시 공세로 전환하는 적극 전술로 나왔으며 군최고사령관의 자격으로 군의 자체개혁을 강력한 어조로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대포냐,버터냐의 고전적 양자택일에서 버터쪽을 택한 고르바초프가 대포쪽으로부터 받는 반발을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지 주목된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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