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여 김영삼」심각하다/난국 타개방안 싸고 안맞는 호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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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제 악재·당내위상등 겹쳐 위기감지/목소리 높이며 지역구도 포기
민자당 계파간 감정의 앙금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과거 4당체제에서의 소속감이 그대로 존속하고 있는 상태에서 두번에 걸친 주도권 다툼으로 불신감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여당으로서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경제·노사문제가 악화되자 견해차는 점점 커가는 느낌이다.
이 때문에 전당대회를 1주일 밖에 남겨놓지 않은 지금까지 당총재의 임기와 대표최고위원의 선출방법도 정하지 못하고 있고 난국타개책도 중구난방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난맥상 속에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이 김영삼최고위원의 구상과 행동방식인데 해석이 분분하다.
1일 당정회의에서 김영삼최고위원은 정부측의 보고가 끝난 뒤 『모든 사태는 힘을 쓰지 않고 해결하는 것이 상지상책인데 왜 KBS에 공권력을 투입해 일을 어렵게 만들었느냐』며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내려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고 서기원 KBS사장의 퇴진을 은근히 종용했다.
그러자 강영훈국무총리는 『정부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고함쳐 한때 어색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총리는 김최고위원이 그런 식으로 회의에서 얘기하려면 뭣하러 당정회의를 하느냐는 투였고 김최고위원은 정부의 일방적 자세를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날 다툼이 있고난 후 김윤환정무장관이 강총리를 대신해 김최고위원에게 사과해 더이상 시비는 없었지만 김최고위원의 심사는 몹시 편치 않다. 김최고위원은 오는 7일 청와대에서 가질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태세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민정계 의원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아직도 야당적 시각을 갖고 있다』 『KBS문제는 이미 결말이 났는데 그동안 대안하나 내놓지 못하던 사람들이 또다시 문제삼아 이미지 관리나 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민정계 의원들은 『당정회의가 정부의 방침을 추인해주는 민정당식 회의를 계속할 수는 없다』 『당에서 정부와 다른 시각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정회의를 할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오히려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김영삼최고위원은 대통령이나 민정계보다 현시국을 훨씬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권력에 기대어 정치를 해온 여권사람들과는 달리 김씨는 평생 여론동향을 주시하며 정치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김씨의 자세를 민정계는 인기위주 정치인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민주계는 그것이 곧 김씨의 정치생명이라고 말한다.
아무튼 김최고위원은 부동산등 경제문제와 노사분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권은 물론 자신의 정치입지도 끝난다는 절박한 문제인식을 하고 있다.
김최고위원은 지난달 26일 청와대회동에서 부동산투기및 전·월세값 폭등,물가상승 등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건의했으며 노대통령도 열심히 메모했다고 한다.
김최고위원이 고민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민자당내 자신의 위상을 어떻게 정립해 가느냐는 것이다.
그는 대권 밀약설등을 통해 민정계 의원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당내에서는 물론 민자당의 대국민 신뢰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민정계 의원들은 최근 김최고위원이 합당이후 줄곧 대권을 향한 등반만을 해왔다며 합당자체에까지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자리 숫자로까지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합당해서 의석수 늘린 것외에 얻은 게 뭐 있느냐』고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이들은 『민자당창당은 정치적 안정을 얻고,장기적 안정을 내각제로 제도화하자는 것인데 당내 불화로 그 어느 것도 얻을 수 없게 됐다』며 『차라리 다시 쪼갰으면 좋겠다』는 식으로까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게다가 민정계가 다른 계보처럼 일사불란하지도 못하고 그 내부에서조차 지도부와 소속의원간의 교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도 불만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김영삼최고위원이 지구당위원장직을 내놓은 것은 이런 불신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라는 것이 민주계 의원들의 설명이다.
더구나 지난 17일 청와대회담내용이 공개된 뒤 김영삼최고위원이 일부 의원들을 이끌고 탈당할 것이란 소문이 나도는등 당내 이질감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 쐐기를 박는 조치라는 것이다.
그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김최고위원에게 인신공격까지 한 민정계의 곽정출씨를 위원장으로 일부러 추천했다고 한다.
민정계 의원들을 포용하지 못하는 한 대표최고위원으로서의 위상은 세워질 수 없다는 인식때문에 김최고위원의 측근들은 그밖에도 몇가지 조치들을 건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최고위원이 무조건 대통령과 민정계를 싸안고 함께 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는 시각은 민정계뿐 아니라 민주계에도 있다. 김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노대통령이 그를 깔보고 이용이나 하려들면 그는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며 『민정·공화계는 야당체질을 못버린다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는 이 정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가 치러진 뒤 김최고위원이 대표최고위원으로서 당운영을 총괄하게 되면 당운영과 국정집행에 관한 그의 개성이 좀더 명확히 드러날 것이라는 것이 민주계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계파간의 설득이 필요한 데 민정·공화계에서는 김최고위원이 위원장직 사퇴에서 보였듯이 내각제개헌을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불신을 갖고 있어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두고볼 일이다.<김진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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