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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진보정상회의의 퇴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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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스웨덴 총선 결과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미국.일본이나 중국.러시아 같은 한반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의 선거도 아니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국가쯤으로나 알고 있는, 유럽의 인구 900만 명에 불과한 나라의 선거 결과를 놓고 말이다. 언론도 대서특필했다. 현 정권 출범 후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논쟁이 계속돼 온 데다 노무현 정부가 복지정책의 모델로 삼고 있는 나라가 스웨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웨덴식 복지정책은 끝났다"는 분석과 함께 "현 정부의 복지 확대 정책도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는 주장이 곁들여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스웨덴의 문제는 복지 과잉이었지만 한국의 문제는 복지 빈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려면 스웨덴 총선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중도우파연합을 이끈 라인펠트 보수당 당수는 복지 정책의 변화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렇지만 그는 선거기간 내내 "고령자와 교육 혜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유권자의 불안감을 줄이려 애썼다. 스웨덴형 복지모델의 전면 부정이라기보다는 일부 수정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의미를 아무리 축소한다 해도 스웨덴 총선이 유럽 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결코 작지 않다. 스웨덴은 오랫동안 '성공한 복지국가'의 전범(典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진보 정당의 영수들은 집권하면 으레 스웨덴을 방문했다. 거기서 고부담.고복지 속에서 어떻게 경제성장의 동력을 잃지 않는지 배우려 했다. 그래서 '진보정상회의(Progressive Governance Summit)'에서도 페라손 총리는 국력에 비해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 영국이나 독일을 제치고 스웨덴의 성공사례를 주제로 가장 먼저 발표하곤 했다.

진보정상회의는 1996년 미국에서 클린턴이 재집권하고, 97년 영국에서 블레어 노동당 정권이, 98년 독일에서 슈뢰더 사민당 정권이 들어선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진보 정상들 간에 재집권 전략을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사적 클럽 성격이 짙다. 해마다 개최됐던 진보정상회의지만 당장 내년에 열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재집권에 실패한 정당이 많아지면서 참석자가 점점 줄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2002년, 독일은 올해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스웨덴 총선은 유럽 사회의 이런 흐름을 재확인한 결정판이다.

페라손 정권은 20%에 달하는 실질 실업률과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청년 실업률, 경제의 비효율성 때문에 선거에서 패배했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부터 성장과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장담해 왔다. 그게 성공했다면 '성장-분배'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는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청년 실업은 늘어가고, 빈부 격차는 더욱 커졌다. 'OECD 국가 중 복지 분야 예산이 최저'인 한국 사회에서 복지 확대 정책의 정당성마저 의심받는 상황을 자초했다.

영국 블레어 총리는 10년간 30%가 넘는 성장을 이룩하면서 경제의 역동성을 살렸기에 노동당 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한국사회에서 복지 분야 예산을 점차 늘려가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복지 빈곤이란 지적도 옳다. 그러나 분배와 복지를 강조하는 것이 지나쳐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게 대세다. 현 정권은 이를 수긍하지 않으려 드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음 정권을 맡겠다는 대선 주자들은 이 논란에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관심은 이미 세금과 생활 경제로 옮아간 지 오래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