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외환은행 매각 무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론스타가 휴일인 24일 오전 존 그레이켄 회장 명의로 이례적인 보도자료를 냈다. "(국민은행과) 새로운 협상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양측 모두 현 계약을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과 론스타는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짧지만 강경한 어조였다.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본계약 시효 마감시한(16일)을 일주일 이상 넘기고 금융당국이 27일 '외환은행 주가 조작 혐의'에 대한 결론을 낼 예정인 상태에서 발표한 공식 입장이라 '국민은행과의 계약을 깰 수 있다'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론스타 측은 보도자료를 낸다는 사실을 국민은행에 미리 알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 시점에서 국민은행과 론스타 어느 한쪽이 '계약 포기'를 선언하면 외환은행 매각은 곧바로 무산된다.

◆ 벼랑 끝에 선 론스타와 국민은행=재협상이 어려운 것은 양측 모두 양보할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기존 조건대로 계약을 연장하자는 국민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지다. 외국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론스타가 기존 조건대로 재계약할 경우 계약기간이 연장되는 부분에 대한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펀드 투자자에 대한 배임 부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론스타의 압박을 단순한 협상 전략으로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러나 국민은행도 돈을 더 내는 게 쉽지 않다. 국민은행 측이 재협상 시작 때 "리딩뱅크로서 여론의 향배에도 신경쓸 수밖에 없다"며 "기존 조건 그대로 연장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선언한 것도 이 같은 사정에서다.

◆ 협상이 깨진다면=협상을 깨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론스타는 당분간 외환은행을 경영하다 새 인수희망자를 찾아도 무방하다는 계산인 것 같다. 외국 금융사 관계자는 "외환은행의 경영 전망이 좋기 때문에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국내외의 다른 투자자에 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7일 열릴 증권선물위원회에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외환카드 주가조작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어 사법 당국이 최종적으로 주가 조작이라고 판정하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의 대주주 자격을 잃게 돼 주식 강제매각처분명령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대주주 자격 상실 시점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주식을 팔아야 한다.

협상이 깨지면 국민은행의 리딩뱅크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해외 진출 방침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게 된다.

◆ 론스타 보도자료는 다목적용=론스타의 이번 보도자료는 협상 대상인 국민은행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검찰을 압박하려는 다목적용이라는 것이 금융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론스타는 이날 "위법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현재 진행 중인 수사를 통해 이런 입장이 확인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을 당시 론스타는 한국의 미래와 법치에 대한 존중, 시장 개방을 추구하려는 한국의 의지 등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한국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 등으로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한국의 기존 국가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최준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