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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Review] 표류하는 미래 … 가족이 뗏목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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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한민국 2005년 출산율 1.08로 세계 꼴찌.

여성들의 '출산파업'이 사회를 위협하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일할 젊은 세대는 태어나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만 인구 구조 그래프의 윗부분을 두툼하게 차지할 고령화 사회가 코앞이다. 이렇게 큰 관점에서는 볼 때는 국가 위기다.

그러나 개인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입장이 달라진다. 자녀 하나를 기르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자유로운 생활도 끝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살거나, 결혼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않는 게 남는 장사 아닌가. 아이는 하나만 낳아 부모가 쏟을 수 있는 모든 물질적.정신적 투자를 해 제대로 키우는 게 합리적인 듯하다.

그런데 출산을 둘러싼 이런 대차대조표가 과연 진짜 합리적일까. 무언가 빠뜨린 건 없을까. '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에서는 현대인들의 대차대조 목록에서 빠뜨린 그 무언가를 끄집어낸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최대의 화재 재난으로 꼽히는 '섬머랜드 사건'. 1978년 이 화재로 50명 이상이 죽고 400명 가량이 다쳤다. 사건 몇 년 후 심리학자 조나단 사임이 BBC 방송국이 찍은 화재 장면을 분석했다. 불길과 싸워 이긴 강한 자만이 살아남았으리라는 편견은 무너진다. 불이 나자 가족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뭉치기 시작했다.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애쓰며 사력을 다해 탈출했다. 반면 친구들끼리 같이 온 경우는 4분의 1만이 일행을 찾았을 뿐이다. 가족들은 67%가 함께 움직였다.

1846년 11월 말, 시에라 네바다를 지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려던 81명의 무리가 눈폭풍을 만나 돈너 계곡에 갇힌다. 일행 중엔 대가족도 있고 젊고 팔팔한 싱글들도 있었다. 구조대가 도착하기까지 6개월간 고립된 그들 중 누가 가장 오래 살아남았을까. 언뜻 생각하기엔 힘있고 건장한 젊은 남성이 오래갈 것같다. 하지만 15명의 독신 남성 중 단 3명만이 살아남았다. 일행의 최고령자로 부상까지 입었던 65세의 조지 돈너는 5개월이 넘도록 눈폭풍을 버텼다. 아내의 극진한 간호 덕분이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대부분 가족이었다. 대가족일수록 생존 확률도 높았다. 가족의 힘은 컸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거의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학자들도 프로이트처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주장하거나 경쟁자로서의 형제 자매를 이야기하는 등 가족의 부정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데만 몰두했다. 저자는 "가족으로부터 벗어난 현대의 해방에는 아직까지 (가족) 과잉 사회의 저항이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가족의 형태가 거의 해체되어가는 지금이지만 저자는 가족을 닮은 공동체가 여전히 필요하리라고 전망한다. 그런 공동체를 조직하는 역할은 유전자에 쓰인 본능대로 출산을 해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이어왔던 여성의 몫이 될 거란다. 현대 여성은 사회에 나가 일을 할 수 있는 데다 간병과 부양까지 맡을 수 있다. 이러한 딸의 역할은 내적으로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더욱 중요해지리라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의 딸들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의무까지 덤으로 짊어질 거라 내다본다. 출산기피증에 걸린 현대인들은 운좋게 태어난 어린이들의 작은 어깨에 지나치게 무거운 미래의 짐을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국가가 해결하면 안 되냐고. 국민연금이니 의료보험 등으로 모든 복지를 해결할 듯 큰소리치던 복지 국가들도 막상 일하고 세금을 낼 젊은 세대 인구가 줄어들자 백기를 들어버렸다. 이렇게 가다 보면 '믿을 건 결국 (형태가 어떻든) 가족'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가족은 안팎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38세 퇴직은 선택), 사오정(40~50대 정년 퇴직), 오륙도(50~60대에 계속 회사에 다니면 도둑놈)란 유행어는 그저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회사는 치열한 전쟁터, 사회는 각박한 정글이다. 게다가 가족 구성원간 역할 분담도 급변하고 있다.

'주식회사 가족'은 변혁기에 놓인 현대의 가족을 잘 경영하는 방법을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해 제시하는 책이다. 노후를 설계하기 위해 가족 재무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급작스럽게 회사에서 잘렸을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극복해야 하는지 등을 꼼꼼히 보여준다. 그러나 단순히 '10억 모으기'나 '부자 아빠 되기' 식의 경제적 관점에만 치우쳐 있지 않아 흥미롭다. 자아 실현 전략, 부부 화목 전략, 자녀 교육 방법, 시간 관리 전략까지 포괄하며 궁극적으로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오탈자가 더러 눈에 걸리고, '가족…'은 흐름이 다소 산만한 면이 있다. 하지만 위기에 놓인 '가족'을 진단하고 그 방향을 제시하는 두 책의 메시지에는 귀 기울일 시점인 듯하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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