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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할 히트상품이 없다(아직도 먼 기술개발:1)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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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주요제품 국산화율 70%안돼/알맹이는 거의 “외제”/남의 그물로 고기잡는 격
기술전쟁은 갈수록 냉혹한 양상을 띠고 있다. 보호무역은 강화되고 기술장벽은 더욱 높아지고 있으며 특허를 무기로 한 선진국들의 텃세와 압력은 드세어지고 있다.
기술전쟁은 무역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 경제발전의 핵심을 누가 쥐느냐를 놓고 각국이 보이지 않는 암투를 벌이며 때로는 무서운 보복을 가한다.
미국은 일본 도시바가 소련에 주요상품을 팔았다고 3년이상이나 지독할 정도로 응징했다. 실질적인 기술전쟁 대리인은 기업들이다. 세계 이곳 저곳에서 일본쇠퇴론이 나오고 있는데도 『우리는 결코 허약하지 않다』고 일본 관료들이 장담하고 있는 것은 그들의 기술개발력과 전환능력을 든든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3개월동안 내리 총18억달러에 이르는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수출물량조차 작년 수준에 못미쳤다. 임금도 오르고 원화환율도 크게 절하되지 않아 수출이 별볼일 없다고 모두들 걱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상 외국시장에 내놓을 게 없다. 그동안 번듯하게 개발해 놓은 히트상품을 계속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81년에는 전자레인지가 히트했다. 83년에는 64KD램으로,그리고 85년에는 VTR로 세계시장을 잡았다. 이어서 86년에는 엑셀승용차를 찬탄하는 소리가 미국 시장에서 들려왔다. 『한국인이 몰려 온다』고까지 경계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외국 이코노미스트들은 『한국 경제가 하강하고 있다』고 말한다. 히트상품은 끊기고 말았다. 우리 경제를 뒷받침해 줄 기술이 너무 취약한 탓이라고 뒤늦은 한탄이 터지고 있다. 『우리는 컴퓨터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고 컴퓨터박스를 수출할 뿐이다.』 상공부 백만기정보기기과장은 우리나라 컴퓨터의 기술수준을 한마디로 이같이 평한다.
컴퓨터의 하드웨어 회로설계ㆍ컴퓨터작동 소프트웨어 등을 모두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 대가로 매출액의 15∼20%를 기술료로 지불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프로세서ㆍ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 등 핵심부품은 모두 미국이나 일본에서 들여오고 있다.
속알맹이 외제,포장은 국산이다. 컴퓨터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상자를 수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상공부에 따르면 전자ㆍ기계ㆍ자동차 등 주요제품도 30∼40%가 외제로 이루어졌다.
우리나라는 금속ㆍ전자전기ㆍ석유화학ㆍ전력 등 전업종에서 기술도입대가로 작년에 무려 38억8천만달러를 지불했다. 작년에 23억7천만 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수출했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품수입이 14억달러,기술료 지불이 7천만달러에 이르렀다.
외국기술을 도입해서라도 좋은 물건을 만들어 팔 수 있으면 좋으나 이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은 더이상 살 수가 없다. 거기에다 기술도입단가는 자꾸 오르기만 한다.
기술도입대가 지급증가율이 87년 27.4%에서 88년에는 29.1%,작년에는 37.5%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재 도입된 기술마저 스톱된다면 우리나라 경제도 멈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동안 우리는 남이 준 그물로 고기를 잡아왔다. 새로운 그물을 개발해내는데 연구도,교육도 부족했으며 또 게을리했다.
『한국에 기술을 주면 시장을 먹힌다』며 미일은 최신기술을 움켜쥐고 있다.
한국은 언제까지 선진국에 매달려 있는 기술종속국이어야만 하는가.<이석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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