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이 빠른 결단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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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자당이 명분없는 집안싸움을 1주일이나 되도록 끌고 가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도,여론도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밖에 없다. 명색이 같은 당을 한다는 사람끼리 서로 치부를 들추고 약점을 잡아내는 이 붕당투쟁ㆍ감정싸움을 국사나 다른 정치를 팽개치고 언제까지 계속할 작정인가. 집권당이 지금 할 일이 없어 이러고 있는가. 시중 여론이 어떤지,보통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을 귀도 없는가.
우리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체면도 돌보지 않는 민자당의 이런 내분이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금 경제는 위기라고 하고,집세때문에 자살자가 속출하고,사회 어느 한 구석도 온전한 데가 없는 이런 시기에 최고 권부와 이나라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든다는 사람들이 고작 하는 일이 이런 내분이요,붕당을 지어 서로 으르렁대고만 있는 것은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일로 권력과 권력집단의 도덕성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국민신뢰가 땅에 떨어진 것을 민자당은 모르는 것인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다. 우리는 당내 계파간의 협상이니,막후접촉이니 하며 시간만 보낼게 아니라 노대통령이 빨리 직접 수습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노대통령은 민자당의 민정계 대표라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나라 국정의 최고책임자요,집권당의 최고지도자라는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집권세력 내부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책임 지울 사람에게는 단호히 책임을 묻고 이번 분란으로 표출된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시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 어느 파가 득을 보고 어느 파가 손을 본다는 계파적 이해 관계가 개재될 여지는 없다. 가령 문제가 되고 있는 「공작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은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 가능성을 십분 수긍하고 있다.
정호용씨의 의원직 사퇴와 보궐선거 후보사퇴 과정에서 나온 기관원 미행이니 세무사찰이니,하는 소리가 그렇고 민주계가 주장하는 도청이니,동태파악이니 하는 얘기도 다 그런 예다. 과거 독재정권에서나 있던 이런 소리들이 민주화를 한다는 6공정부에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가. 돈봉투문제로 항의하는 대구서갑구 주민들에 대한 잇따른 폭력사건같은 것도 정말 해괴한 일이다. 6공 이전에도 이런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일단 공개돼 여론이 들끓으면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도 같은 류의 폭력이 되풀이 되고 있다.
또 이번에 제기된 민자당의 비민주적 운영문제도 어김없는 사실이 아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결국 노대통령 외에 달리 있을 수 없다. 문제의 박철언장관에 대한 조치도 노대통령이 할 일이요,공작정치나 당운영의 개선도 노대통령이 결단을 내릴 문제다.
서로 으르렁대는 당내 3계파가 타협하여 이런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따라서 시간을 더 끌지 말고 노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이 보기에 속이 후련하도록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취해 주기 바란다.
오늘날 6공정부와 집권세력을 보는 국민의 눈은 지극히 냉담하고 여권의 신용은 땅에 떨어졌음을 알아야 하며,상황은 비상한 결심과 조치를 시급히 요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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