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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ㆍ중국인/박병석 전홍콩특파원의 「대륙기행」: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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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인끼리 말이 안통한다/셀수 없을 만큼 많은 사투리/한자도 정­약자로 혼란… 10명중 3명이 “문맹”
이름있는 한국 대기업의 홍콩지점장 L씨(42)는 대중국 비즈니스에 두각을 보이던 유능한 지점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엉뚱한 일로 진로가 빗나가 결국 7년간의 홍콩생활을 포함,15년간 몸담았던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한중관계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던 83년 홍콩지점장으로 부임했던 L씨는 당시 한국여권 소지자로는 중국방문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던 때부터 중국을 드나들었고 실적도 좋아 홍콩에서는 중국통으로 손꼽혔다.
그는 대학시절 중국어를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어 공부도 열심히 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몇 안되는 지점장이기도 했다.
L씨의 불운은 본사 회장의 홍콩방문때 일어났다.
그는 홍콩 유력인사와 본사회장의 면담을 위해 회장을 수행,특별렌트한 최고급 승용차 롤스로이스를 타고 운전사에게 유창한 만다린(표준 중국어인 보통화)으로 『○○로 가자』고 말했다.
그러나 운전사는 고개만 갸우뚱거리다가 광동어로 『못 알아 듣겠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당황한 L씨는 만다린과 영어를 번갈아 가며 약속 장소를 거듭 말했으나 운전사는 끝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L지점장은 진땀속에 「왼쪽」,「오른쪽」,「앞으로」라는 세마디 광동어만을 연발하며 손짓 발짓끝에 가까스로 약속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으나 약속시간을 지킬 수는 없었다.
화가 난 회장은 크게 질책했고 L지점장은 주재 7년동안 중국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으로 오인됐다. L씨는 홍콩에서는 광동어만 통용될 뿐 보통화는 외국어나 다름없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으나 회장의 오해를 풀지는 못했다.
이같은 사례는 홍콩에 주재하는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들에게는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의 방언에 대한 감이 없는 한국인들 중에는 광동어도 중국어 일테니 서울말과 제주도 사투리의 차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85년 12월 신화사 홍콩분사에서 개최됐던 중국 국무위원겸 홍콩ㆍ마카오 사무소주임 지펑페이(희붕비)의 내ㆍ외신 기자회견은 광동어와 보통화와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49년 중공 정권 수립이후 홍콩을 공식방문한 최고위 중국관리인 희의 기자회견은 보통화(희씨)와 광동어(홍콩기자들)만으로 진행됐고 이들의 의사소통을 위해 보통화­광동어 통역이 등장 했다.
이처럼 같은 중국인인데 중국어가 통하지 않는 현상은 비단 광동어 지역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만 여행중 대만TV를 본 사람들은 출연자는 분명 중국말을 하고 있는데도 화면에는 중문자막이 따로 나오는 것을 의아히 생각했을 것이다.
이는 대만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는 사람들의 선조가 복건성 남부지역에서 온 민남 사람들이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민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만의 표준어인 「국어」와 본토의 「보통화」는 분단 40년 동안에도 동질성을 유지해 왔다.
중국방언의 종류가 얼마나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확한 답이 없다. 중국사회과학원이 내놓은 『중국방언지도』는 학술적 가치가 있는 훌륭한 책이나 이 책에서 조차 방언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씨성을 가진 사람을 「퍄오」라고 부르면 보통화를 할줄 아는 사람이며 「푸」라고 하면 국어를,「폭」이라고 하면 광동어를 하는 사람인데 이들 세 발음의 어조(성)는 전혀 다르다.
한중관계 발전속도 등을 감안할 때 우리도 만다린외에 광동어나 상해어 정도를 구사할 줄 아는 상사원이 필요한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비단 말뿐만 아니라 문자도 정자와 약자로 갈려 혼란을 주고 있다.
83년 5월 춘천비행장에 불시착했던 중국민항기의 불청객들과 이를 취재했던 기자들이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중국인 승객들은 자신들이 「심양」에서 왔다고 적어주었으나 우리 기자들은 이 이상한(?) 한자(중국문자)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심양」은 「심양」의 약자(간자)로 중국대륙에서는 모두 이같은 간략화 시킨 문자를 쓰고 있다. 우리가 쓰는 한자나 대만의 문자와도 다른 것이다.
대만에서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 조차 간자를 한자 한자씩 보면 반정도 밖에 모르지만 문장으로 읽을 때는 대충 추측할 수 있다고 들 한다.
중공당국은 일찍부터 기존 중국문자가 너무 어려워 익히는데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한자의 문자개혁을 추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자개혁은 익히기는 쉽지만 간자만을 배운 새세대는 정자로 쓰인 5천년의 중국고전을 소화하는데 지장이 많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당국의 문자개혁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10명중 3명이 문맹자라고 중국의 공식통계가 밝히고 있다.
중국당국은 87년 현재 28.6%에 달하는 문맹률을 2003년에 가서 10%수준으로 낮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중국인 끼리 중국어가 통하지 않고 10명중 3명이 자기나라 글을 모르는 나라,중국은 역시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지대인다) 나라임에 틀림없다.PN JAD
PD 19900410
PG 05
PQ 02
CP HS
SA P
CK 04
CS D01
BL 2757
GO 중앙칼럼
GI 권영빈
TI 자유로운 남편이 되기 위하여/권영빈(중앙칼럼)
TX 마치스모 현상이라는게 있다. 산업화ㆍ도시화ㆍ핵가족화에 밀려 남성이 남성다움을 상실해 버림에 따라 자신의 남성다움을 폭력과 폭행을 동원해서 여성보다 우위에 세우려는 자신없는 남성들의 과장된 행위와 허위의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강한 남자,책임감 있는 가장이라는 이미지는 머릿속에 살아있지만 현실의 생활은 남성을 더욱 왜소화시키고 가장의 권위를 망가뜨릴 뿐이었다. 왜소해지고 실추된 남성상을 여성에 대한 폭력과 성폭행으로 만회하려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적 현상속에서 유래된 말이 마치스모 현상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남성이 왜소화하고 무력화 되어가는 점에서는 비슷한 현상이 이웃 일본에서 최근 일기 시작했다는 「귀가공포 증후군」이다.
직장생활 평생동안 오로지 일만을 위해 살아온 성실한 샐러리맨이 어느날 갑자기 회사속의 자신의 위치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근면ㆍ성실로 일해 왔지만 회사의 서열은 제자리 걸음을 걷게 되었고 젊고 능력있는 후배가 어느덧 자신을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연공서열이 중시되던 기업풍토에서 능력주의 서열로 바뀌어 졌다.
사무는 자동화되고 늙고 무능하면 갈곳은 뻔해진다. 능력있는 남편의 위상이 흔들리고 책임있는 가장으로서의 존경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집에 돌아가기가 두려워지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어진다. 중증이 되면 자살로 연결된다.
우리 사회 못지않게 남성의 우월감과 남성다움을 내세워온 일본의 남성우위체계가 내부적으로 붕괴되어가고 있다는 분명한 징조로서 독매신문이 지난 1월에 종합보고한 내용이다.
유교적 남성우위론과 농경사회의 가부장적 전통으로 대장부적 남성세계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사회 또한 형태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마치스모현상과 귀가공포증이 혼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사내 대장부가 제식구를 굶기겠느냐』는 전인격적 대장부의 호언이 이젠 현실생활에 먹혀들지도 않게 되었고 남성의 그 박력있는 말 한마디에 여성이 자신의 일생을 맡길 만큼 세상은 어리숙하지 않다.
이미 87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통과 되었고 여성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가족관계법이 개정되면서 여성의 신분과 법적 지위가 그 어느때보다 향상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기혼남녀 1천5백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도 「아내 일을 도와준다」는 남편이 54.6%에 이르고 집안일의 중대결정 사항에서도 아내의 영향력이 더 높다는 추세로 나타났다.
보사부의 공식 집계로도 맞벌이 부부의 숫자가 80만명을 넘어섰고 공식적으로 집계될 수 없는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포함하면 1백만명이 훨씬 넘으리라 한다. 남성이 직장을 그만두면 일나간 아내를 대신해서 정말 아기보고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마치스모적 두려움 때문에 맞벌이 남편으로서는 더욱 기를 쓰고 직장에 매달려야 할 형편이다.
마치스모현상과 귀가공포증이 혼재하는 그러한 추세가 머지않은 장래에 당장의 현실로 닥칠 진퇴양난의 위기상황을 대장부의 의연함과 남성의 폭력만으로 맞설 것인가.
우선 남성이 스스로 자유스러운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 두가지 당면한 현실을 남성의 처세로서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풀어가기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가족부양의 모든 책임을 남편이 지고 있다는 종래의 우월적 의무감,강박관념에서 탈피해야 한다. 이말은 비록 아내가 직업을 가지지 않고 평생 가사노동에만 종사했다고 해서 가정경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못난 여성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성의 전업 가사노동비를 얼마로 산출할 것이냐에 대한 동의대 정금숙 교수의 연구논문에 따르면,적게는 월 42만4백69원,많게는 월 72만9천2백1원이라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결혼한지 10년째 남편은 성실히 직장을 다녔고 아내는 알뜰살뜰 가사에 전념했다. 그러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는 정년까지의 월급과 상여금이 계산된 보상금을 받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하면 공사장 여자인부의 일당 5천5백원이 적용되는게 우리의 지금 현실이다. 가사노동에 대한 남편의 무시가 뭉쳐져 사회의 무관심으로 방치되고 있다.
눈에 뜨이지 않고 빛나지 않는 아내의 가사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이해와 평가가 달라질때 우리사회의 남성은 여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고 허상의 가부장 자리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게 된다.
둘째,집안에서 일하는 여성만이 아니라 집밖에서 일하는 아내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달라질때,남성들은 또 여성들로 부터 해방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중 취학전 아동이 1백50만명 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탁아소 시설은 고작 3백63개소에 수용인원 1만명에 그치고 있다.
지난달 서울 마포구 망원동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의 어린 남매가 숨진 사고가 있었다. 맞벌이 부부가 일터로 나가면서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자 밖으로 문을 잠근 탓에 남매는 숨졌다.
살림형편이 낫다고 해서 아기보기 문제가 해결되는게 아니다. 똑똑한 아들을 둔 맞벌이 부부는 시골처녀를 데려다 가정부겸 아기보모로 삼았다. 아기를 키워본 경험이 없는 이 시골처녀는 아기가 보채고 울때마다 우유에 수면제를 타멱여 잠재우는 법을 익혔다. 귀엽고 똑똑했던 아들은 결국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지진아가 되어 버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내의 자아실현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중단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우수한 여성인력이 집안에 두고온 아이 때문에 스스로 직장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탁아소의 신ㆍ증설은 화급하고도 다급한 우리의 당면과제가 되었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대장부의 기개를 아기보기로 추락시키지 않기 위해서,마치스모현상과 귀가공포증에 시달리는 비겁한 남성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자유스러운 남편이 되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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