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봉준호 감독 "이무기로 마감하고 싶냐는 얘기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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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로 한국영화의 흥행 신기록을 갈아치운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기 까지 주변의 반대로 마음고생을 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18일 오후 3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문화콘텐츠 국제컨퍼런스 '2006 DICON' 캐주얼 토크에서 300여명의 관객과 만난 봉준호 감독은 자신의 장편영화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이후 '살인의 추억'과 '괴물'이 흥행성적이 좋았던 것은 전적으로 행운이라며 이 두 작품이 준비될 때 주변에서 들었던 얘기들을 털어놨다.

봉 감독은 "'살인의 추억'은 저주받은 기획이라는 말을 들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과 대학로에 올려진 연극 '날보러와요'를 바탕으로 했는데, 제작사인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를 빼고 저주성의 말이 많았다"며 "가상의 범인을 설정해 때려잡으면서 통쾌하게 끝내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영화의 완성된 편집본을 보고 회수해갔던 투자자도 있었다. 그 분들 입장에서는 그 시점에서는 정당했겠지만 영화 다 찍어서 거의 완제품 직전까지 간 건데, 투자를 회수한 것은 정신적 타격이 컸다. 나중에 영화가 잘되자 송강호 선배는 되게 고소해했었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영화는 투자, 마케팅 등을 위해서 장르가 있어야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농촌스릴러'라고 장르를 만들어 기자들에게도 말하곤 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봉 감독은 "경운기가 발자국을 지우고, 형사가 점집을 찾아가고, 동네 꼬마들이 어수선하게 뛰노는 가운데, 직감 수사만 20년만 해온 형사가 동네 아줌마들 붙잡고 탐문수사를 벌이는 것을 보고 '농촌 스릴러'를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부연했다.

봉 감독을 또 "세번째 영화 '괴물'에서는 본격적으로 괴수영화라는 장르를 명확히 말할 수 있었지만, '한강에서 괴물이 나오는 영화를 찍는다'고 말하면 5초동안 다들 반응이 없었다. 단 5초 정도 바라보다가, '준호야 술한잔 할까'하고 술자리를 옮기면, '친한 선배니까 하는 말인데 네가 하려는 걸 하지마라'며 저주섞인 말들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살인의 추억'이 어쩌다 잘되다보니 겁을 상실했구나, 제 정신이니' 하다가, 영화와 관계없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얘기했다가 '이무기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냐', '심모 감독 잘하고 있는데 왜 너까지'라는 말을 들어 시나리오 쓰기 전부터 융단폭격을 받을 것 같아 매체 인터뷰에서도 무슨 영화를 만든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봉 감독은 언론의 '결과론'에 대한 비난의 말을 던지기도 했다.

봉 감독은 "역대 박스오피스 1등 기록까지 세우고, 저도 어리둥절했는데, 분석기사들을 보니까 '괴물 이래서 성공했네요', '성공 요인 5가지…도대체 왜이랬을까' 등을 신기해서 본다. 그러나 결국은 다 결과론"이라고 꼬집었다.

봉 감독은 "기록돌파 기사들을 보면 개봉전 흥행 방해 요소들이 '한국산 괴물이 둔치를 뛰어다니니 관객들이 좋아한다'며 흥행 요소로 돌변했다"며 "반미, 미국에 대한 풍자적 모습이 개봉전에는 흥행에 장애가 될 것 같다고 하더니 개봉후 젊은 이들에게 어필했다는 식이다"라고 지적했다.

<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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