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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한국 경찰을 들러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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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두 달 전 서울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발생한 영아 유기 사건의 수사팀이 조만간 프랑스 현지 수사당국에 파견될 것 같다. 프랑스 사법당국이 "한국의 수사 담당자가 와서 참관해도 좋다"는 내용의 서신을 법무부를 통해 보내 온 데 따른 것이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초동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등을 보낼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로 수사팀을 보내는 것에 대한 반응은 엇갈렸다. "한국 과학수사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는 기대감 속에 "자칫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찮다.

우선 수사팀 반응은 긍정적이다. 서울중앙지검 박충근 3부장검사는 "프랑스가 한국의 진상 규명 노력을 인정해 기회를 준 것"이라며 "현지 조사에 외국의 수사 관계자가 참여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당초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프랑스 당국의 수사의지가 의심스럽던 상황에서 프랑스가 먼저 우리 수사기관에 손을 내밀었다는 점은 평가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법무부 국제형사과 관계자도 "사건 해결이 우선인 만큼 프랑스와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쿠르조 부부와 영아의 유전자(DNA) 검사에서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를 낸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측도 자신에 차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도 많다. 쿠르조 부부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의 혐의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며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점이다. 사건의 본질이 호도돼 마치 한국에 가면 불공정한 수사를 받을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에서 수사팀이 파견될 경우 실익이 없다는 점이다.

또 수사팀의 현지 참여가 자칫 피의자 측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언어와 수사 방식의 차이로 프랑스 측에 절차적 정당성만 제공하고 들러리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도 주권 행사 차원에서 수사와 재판관할권을 보다 적극적으로 프랑스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벌써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엔 "프랑스인은 한국에서 치외법권(외국인이 체류 중인 국가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을 누리겠다는 것이냐" "일부 프랑스인의 왜곡된 문화적 우월감의 표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등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자주도 중요하지만 국민은 이웃에서 발생한 범죄가 순조롭게 해결될 때 공권력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주권과 자주는 이럴 때 필요한 것 아닌가.

김종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