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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을 훼손하는 '헌재소장 위헌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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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헌법재판소 소장 공백사태가 계속되고 있어 심각한 헌정 왜곡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헌재 소장의 공백은 최고 헌법기관 구성상의 흠결을 상징한다. 또 헌법체계상 헌재 행정의 민주적 정당성에 흠이 생긴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헌법재판 기능의 지연이나 장애다.

헌재법은 헌재의 심리정족수를 재판관 7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재판관 1인의 공백이 있더라도 심리는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심리는 인권 보장과 헌정 질서 유지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헌법상 법률의 위헌, 탄핵, 정당 해산, 헌법소원의 인용을 결정하는 경우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엄격 정족수 때문에 공석인 재판관의 견해는 주요 결정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그 재판관이 법에서 의제되는 결론과 반대 견해를 갖고 있다면 헌재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위헌인 법률이 합헌이 되거나 탄핵돼야 할 공직자가 탄핵되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국민 기본권 침해에 대한 헌법소원에서 국민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 우호적일 수도 있는 재판관의 공석 때문에 재판관 3인의 반대만 있어도 구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로 소장이 공백인 헌재는 주요 결정을 미룰 수밖에 없다. 그만큼 헌법과 인권 보호는 소홀해진다.

한편 소장 공백사태를 초래한 임명절차상의 위헌성이 과장돼 정치공세 성격이 강하면 헌정 파행의 심각성은 더욱 심각하다. 위헌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은 반드시 '현직 재판관 중에서 소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돼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재판관 중에서'라는 소장 임명 조건은 호선이나 대통령 단독행위를 전제로 만들어진 규정이다. 따라서 현행처럼 국회 동의를 조건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체제에서는 문리해석에만 의존할 때 다음의 문제점이 있다. 첫째, 논리적으로 소장 공백이 다반사이거나 치유불능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재판관 임명 후 소장을 임명하는 별도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재판관은 있되 소장은 없는 경우가 재판부 구성마다 일어나고, 소장 임기는 고무줄처럼 불안정하며, 매 재판부의 대표성이 훼손될 수 있다. 둘째, 헌재 출범 이후 현재까지의 헌재 구성이 모두 위헌이 돼 헌정 부인을 초래할 수 있다. 엄격 해석론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명만 있었지, 임기는 시작되지 않아 재판관의 직에 있지 않았던 민간인을 소장 청문절차 대상으로 삼았던 제3기까지의 소장 임명 절차도 위헌이 된다. 셋째, 헌재 소장 임명 범위를 재판관으로 제한함으로써 임명권자의 선택 여지를 과도하게 축소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규정에 대해선 헌법 체계와 역사에 따른 보충 해석이 가능하다. 가능한 대안은 '재판관 중에서'라는 규정을 대법관 지위를 가지지 않는 대법원장과 달리 헌재 소장은 재판관 지위를 겸하게 하는 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면 헌재 소장 임명은 곧 재판관 임명을 포섭하게 돼 두 지위의 동시 임명이 가능하고, 엄격한 문리해석의 문제점을 치유할 수 있다.

필자는 문리해석론에 따른 위헌론이 전혀 근거 없는 것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 해석론만이 유일한 헌법 해석이 아닌데도 절대적 권위를 부여해 헌정 부정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헌정 파행을 초래하는 것은 법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강조하자는 것이다. 정치권이 독단적 헌법 해석에서 초래된 소모적인 절차 논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헌정이 조속히 정상화되기를 소망한다.

김종철 연세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