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보안법 만능주의에 제동/헌재 「한정적 합헌」결정의 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안보와 인권사이 고심끝 절충/애매했던 조항…처벌대상 대폭줄듯
2일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7조1항(찬양ㆍ고무)과 5항(이적표현물제작ㆍ반포등)에 대해 한정합헌결정을 내린 것은 사실상 일부 위헌결정을 내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결정에 따라 앞으로 이 조항에 의한 처벌대상이 엄격히 축소ㆍ제한 될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재야법조계에서는 국민기본권 신장을 위해 바람직한 결정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국가보안법의 남용ㆍ악용부분에 대해 헌재가 「국가의 존립ㆍ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롭지 않은 단순한 찬양ㆍ고무ㆍ동조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선언한 것은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보안법 적용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와함께 문서ㆍ그림등 표현물이 이적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국가존립ㆍ안전을 해치지 않을 정도라면 처벌할수 없다는 것도 명백히 했다.
이같은 헌재의 결정은 그동안 일선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이 조항의 형식적ㆍ문리적 해석에 얽매여 당사자의 이적의도 여부및 결과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행위자체 위주로 기계적으로 적용,처벌해온 실무관행에 큰 경종이 아닐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국가보안법위반 사건을 맡을 검사나 판사는 반드시 해당사건이 국보법의 입법취지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엄격히 따져야할 책무를 지게됐다.
이사건 쟁점은 국보법7조1,5항이 처벌가능성을 예측할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됐는지 여부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는지 여부.
이는 결국 문제조항들이 형벌의 종류와 범위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규정돼야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나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었다.
위헌을 주장하는 신청인들은 『법률은 국민이 처벌가능성을 예측할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지나치게 포괄적이거나 애매ㆍ막연ㆍ불명확한 처벌법규는 자의적인 행정권 행사에 의한 국민기본권 침해의 여지를 갖게되기 때문에 법치주의 이념과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위헌이유를 설명했다.
신청인들은 이같은 관점에서 국보법7조1,5항은 반국가단체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롭게한 자는 모두 처벌할수 있다는 규정으로 ▲기본권제한 법률로서는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막연하며 ▲그결과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합헌론을 폈던 법무부는 『형사처벌 법규는 처벌해야할 천태만상의 구체적 불법행위들에서 공통점을 추출해 일반화ㆍ유형화한 것이므로 일정한도내에서 추상화ㆍ포괄화되는것은 불가피하다』고 맞서왔다.
법무부는 『기본권제한 법률내용이 구체성과 명확성을 요구한다하여 법관이나 법률학자들의 법해석이 필요없을 정도로 구성요건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며 『반국가단체활동을 찬양ㆍ고무ㆍ동조하거나 이적표현물을 제작ㆍ반포하는등의 행위는 우리현실상 국가안보에 실질적해악을 초래할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법무부는 국보법이 48년제정된 이후 국가안보을 위해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해온 현실을 감안해줄 것을 헌재에 요청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양측의 주장을 절충적으로 받아들여 해당조항이 죄형법정주의에 어긋날 소지가 있는등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남북대치등 우리 안보여건상 전면위헌은 어렵다는 현실적인 고심끝에 「위헌성한정합헌」이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볼 수 있다.
헌재는 우선 국보법7조1항 「고무ㆍ찬양」규정에서 「구성된」「활동」「동조」「기타방법」「이롭게한」등 다섯가지 용어가 지나치게 다의적이고 적용범위가 광범위하다고 지적했다.
용어의 광범성은 국가존립ㆍ안정이라는 법익보호 목적없이도 국민의 표현자유를 위축ㆍ침해할수 있고 법운영당국의 선별적ㆍ자의적 집행에 의해 제도외적으로 남용됨으로써 기본권침해소지가 있다고 미국의 광범성 이론(Over­Breadth Doctrine)을 인용한 것이다.
또 체제문제와 관계없이 북한과 접촉ㆍ협력하는 일은 단일민족으로서 공감대형성이자 헌법이 추구하는 평화통일정책의 추구인데 이를 무분별하게 처벌할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위헌소지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막강한 군사력으로 대치하여 남침위협이 상존하는 현실에서 전면위헌을 선언하는 것은 국가존립ㆍ안전을 희생시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치지 않는 찬양ㆍ고무ㆍ동조및 이적표현물제작등은 처벌할수 없다」는 조건부 합헌결정을 내리게된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개정안에서도 이같은 문제점을 인정,목적범만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이번 헌재결정은 이에 더나아가 이적의도가 다소 있다하더라도 자유민주체제를 파괴할 정도가 아니라면 적용을 배제해야한다는 전진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 헌재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이번 헌재의 결정은 국가보안법을 정밀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의미가 더 크기 때문에 이같은 결정취지가 구체적 사건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법운영당국의 체질개선과 인권신장의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김석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