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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구전문기자 특별기고] 초일류 승짱, 사랑해요!

중앙일보

입력

박력과 품격은 풍기지만 왠지 모르게 말을 걸기 쉬운 이승엽. 연초부터 이승엽을 전담해 온 한 일본 기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초일류 선수가 나를 감동시킨 이유는?

열대야의 밤이었다. 진구(神宮)구장의 어두운 기자석에서 나는 격렬한 외침을 들었다. 얼굴을 들어 3루측 벤치를 봤다. 아니 이승엽이 벤치 앞 광고판을 왼발로 강하게 세 번 걷어차는 것 아닌가?

그리고 그는 뒤돌아 3루 심판 쪽을 향해 “어째서”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소란스러워진 기자석 안에서 나는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가 강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이 광경을 확실하게 기억에 남겨두자고 말이다.

사건은 지난 8월9일 야쿠르트와의 12차전에서 일어났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4점을 앞서고 맞이한 9회 무사 1, 3루의 장면이었다. 이승엽이 친 통렬한 타구가 좌익수 방향으로 날아가자 좌익수 라미레스가 열심히 다이빙캐치를 했다. 그러나 글러브에 들어가기 직전 원바운드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판정은 ‘아웃’이었다. TV에서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다시 보여줬기 때문에 공이 원바운드한 것은 명백했다.

기자석에서도 “원바운드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벤치에서 튀어나온 하라 감독이 항의했다. 이승엽은 1루 베이스 위에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아웃 판정. 2루심으로부터 벤치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자 이승엽은 억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벤치 앞에서 그것을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이었다.

확실히 이승엽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판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했다. 저 무서운 표정을 보는 순간 이승엽이라고 하는 인간의 깊숙한 곳에 있는 뭔가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이 마구 흔들렸다.

그는 기억하지 못할 테지만, 나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지난 1월30일 밤, 나는 한국에서 아시아나항공기를 타고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할 예정인 이승엽을 기다렸다. 예정시간이 지나도 게이트에 그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사 마감시간이 임박해 있던 터여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간신히 모습을 드러낸 이승엽의 인상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표정을 전혀 바꾸지 않고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나도 “이번 시즌의 구체적 목표를 숫자로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그는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답만 내놓았다. “이거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 이틀 전이었다. 이승엽과 주전 1루수 자리를 둘러싸고 경쟁을 벌일 것으로 거론되던 조 딜런이 미국에서 도착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계열 스포츠지 <스포츠 호치>는 “어디든지 맡을 것”이라는 딜런의 일본 도착을 1면에 크게 다루고, 이승엽의 도착 소식은 2면 구석에 사진도 싣지 않는 조그만 기사로 다뤘다. 이미 일본에서 2년간 활약한 이승엽보다 활약이 미지수인 딜런을 자이언츠의 구세주로 기대하는 목소리는 역시 <스포츠 호치>의 현장에도 있었다.

곧 시작된 미야자키(宮崎)에서의 동계 캠프 초반, 나는 그와 긴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 자이언츠에 대한 인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이언츠에 와서 많은 스타 플레이어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하지만 모두 잘 해줘서 다행이다”고 답했다. 그 답이 인상적이었다. 야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더불어 따뜻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조금씩 이승엽이라는 인물에 빨려 들어갔다.

한국대표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출전하기 위해 캠프를 중간에 떠나던 날, 그리고 세계의 대무대에서 대활약한 뒤 돌아온 날의 이승엽은 모든 것이 달랐다. 공항에는 신문과 방송 보도진이 대거 몰려왔고, 무엇보다 비교가 안 된 것은 이승엽의 표정이었다.

기자회견장의 단상에서 똑바로 앞을 쳐다보고 있는 그의 얼굴 표정에서는 고생을 거듭한 롯데 자이언츠 시절 잃어버렸던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보였다. 이미 그는 그 시점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4번 타자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개막전이 모든 것을 보여줬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3월31일 이승엽의 제1호 홈런이 도쿄돔의 라이트석 상단에 꽂혔을 때 관중의 함성은 아직까지 내 귀에 남아 있다. WBC에서 라이벌로 싸운 우에하라 투수에게 1승을 선물하는 한 방으로 중압감에서 빠져나온 그는 드디어 홈런을 연발하기 시작했다.

4월 하순부터 5월 초에 걸쳐 타격의 리듬을 다소 잃었을 때도 그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스스로만 좋아지면 반드시 다시 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그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단 부활한 4번 타자의 방망이는 또다시 침묵하는 일이 없었다.

이승엽의 속내에서 발견한 품격

단 한 번, 그가 기운이 빠진 밤이 있었다. 지난 5월26일, 그가 속했던 롯데 마린스를 본거지인 도쿄돔으로 맞이해 싸운 3연전이었다. 한신 타이거스와 더불어 일본에서 가장 열성적이고 과격한 롯데 팬들은 이승엽이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그리고 타구를 처리할 때마다 통렬한 야유를 보냈다. 똑같이 롯데에서 이적해 온 고사카 선수를 박수로 대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경기 후 그는 “팬들이 왜 내게 야유를 보내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매우 슬프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에서 매우 상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4번 타자가 보인 약한 모습은 그의 섬세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6월11일 어웨이 게임을 위해 지바 롯데 마린스 구장에 들어가 다시 롯데와 대전할 때 그는 또 다른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줬다. 홈런을 치고 홈으로 돌아왔는데, 앞서 있던 주자인 오제키 선수가 3루 베이스를 밟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바람에 이승엽의 홈런이 취소당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풀이 죽어 있는 오제키에게 다가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라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제키는 다음날 “‘승짱’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 정말 한숨 놨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냈다.

매일 그를 쫓아다니며 여러 가지 이야기, 에피소드를 기사화하면서 나도 서서히 이승엽으로 하여금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됐다.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아직 이승엽의 ‘속내’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안 되었다는 딜레마 또한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지난 7월18일 고시엔(甲子園)구장의 실내 연습장에서 타격연습을 기다리던 이승엽과 일본어로 직접 대화를 나눴다.

눈앞에 다가온 한·일 통산 400호 홈런에 대해 물었다. “지금은 올 시즌 40개를 치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쓰이(뉴욕 양키스에 진출한 일본인 홈런타자)와 나는 리그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등의 여러 가지 속내가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일문일답을 본지의 최종판에 보도했다. 들은 이야기를 낱낱이 지면에 옮겨 버렸기 때문에 조금은 걱정도 됐다. 이승엽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날 이승엽은 “좋은 기사를 써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활짝 웃어 주었다. 그런 선수는 일본의 1류 선수 중에는 단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승엽에 마쓰이를 떠올리다

내가 기사화한 이후 일본 국내에서는 그의 400호 홈런에 대한 기대가 고조됐다. 그리고 지난 8월1일 그 기념호가 터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나는 그날 도쿄돔에 있지 않았다. 회사의 규정에 의해 나는 그날 휴식을 취해야 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TV를 통해 이승엽이 1회 공격에서 400호 포물선을 왼쪽 관중석을 향해 그려 내는 것을 본 순간 나는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빠졌다.

이어 9회에 극적인 끝내기 홈런이 백스크린 오른쪽에 꽂히는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왜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왜 구장의 열기에 내 몸을 던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기념할 만한 날 밤에 이승엽의 코멘트를 내 귀로 듣고 싶었다. 그리고 1면의 기사를 내가 쓰고 싶었다. 내 야구기자생활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어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루하루 이승엽의 한 타석 한 타석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국인들에게는 물론 더하겠지만 내게도 이승엽은 감정이입을 시켜 주는 선수다.

초일류 스포츠 선수에게는 좋은지 나쁜지를 떠나 가깝게 다가서기 힘든 분위기를 풍기는 선수도 있다. 그러나 이승엽은 박력과 품격은 풍기지만 왠지 모르게 말을 걸기 쉬운 측면이 있다. 처음에는 긴장하면서 그를 취재해야 했지만 이승엽 본인도 자이언츠라고 하는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요즘은 언제든지 편하게 이야기를 걸고 성실하게 답해 주는 사이가 됐다.

자이언츠 수뇌부, 선수, 구단 스태프들로부터도 그는 인기가 높다. 이승엽보다 나이가 많은 이들로부터는 ‘승짱’, 그리고 나이가 어린 이들로부터는 ‘승상’이라고 불리며 대단한 사랑을 받고 있다. 고사카·아베·다카하시·시미즈·오니시·가메이 등과 특히 사이가 좋다. 최근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이승엽이 팀의 중심에 있음으로써 팀의 분위기는 언제나 좋다. 좀 더 승부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더 분위기 좋은 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02년까지 일본 프로야구계에 있었던 양키스의 마쓰이 히데키도 팀의 기둥인 동시에 무드 메이커였다. 타자로서 이승엽과 마쓰이 어느 쪽이 위인가를 비교하는 것은 나한테는 힘든 일이지만, 성실한 인간성이라고 하는 면에서는 두 사람이 공통적인 면이 많다고 생각한다. 자이언츠는 마쓰이를 메이저리그로 보낸 이후 한 번도 우승을 못했다. 그래서 더욱 내년의 자이언츠에는 이승엽이 필요하다.

올해 시즌 오프의 자이언츠에 관한 최대 관심사는 이승엽이 자이언츠에 잔류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것인가 단 하나다. 물론 나에게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며, 현 시점에서는 이승엽 자신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을 듯싶다. 물론 그의 대리인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겠지만 본격화하는 것은 역시 시즌이 끝난 후가 될 것이다. 싸우는 도중에 다른 싸움에 마음을 쏟는 것은 그의 이념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항상 메이저리그라고 하는 꿈은 그의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되나 나로서는 이승엽이 다시 한번 자이언츠의 유니폼을 입기를 강하게 희망한다. 자이언츠가 왕자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그의 힘이 절대로 필요하며, 더 솔직히 말하자면 다시 그의 146게임에 동행해 그의 말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입사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을 포함해 축구·스모·올림픽·야구 등 다양한 세계를 뛰어다니며 취재해 온 내게도 이승엽은 격이 다르게 매력적인 존재다.

분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밤의 다음날, 진구구장은 무더웠다. 시합 전 연습 때 이승엽은 자신이 걷어찬 광고판에 다가가 찢어진 부분을 테이프로 고쳐 놓은 것을 보고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제는 안 찹니다”라고 말했다. 활짝 웃는 그의 옆에 있던 나는 “역시 이승엽답구나” 하며 웃어 보였다.

화이팅! 이승엽을 응원해주세요 GO!

출처 : 월간중앙 기타노 신타(北野新太)_스포츠 호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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