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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당근' 부시는 '채찍'에 무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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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4일 밤(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낮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 AFP=연합뉴스]

"잘했어요(Good job)."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4일 낮(이하 현지시간) 정상회담 결과를 언론에 설명하는 언론 회동(press availability)을 끝내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돌아보며 중얼거리듯 이렇게 말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를 두고 "두 정상이 견해차를 그럭저럭 감춘 데 대한 안도감의 표시"라고 해석했다.

겉으로 드러난 회담 결과는 무난해 보인다. 두 정상은 동맹을 강조하고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자는 데 동의했다. 그렇다고 해서 두 정상 간 생각의 차이가 좁혀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언론 회동에서도 은근한 차이가 감지됐다.

◆ 대북 제재 시각차 결국 노출=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은 "정상회담에서 대북 제재 문제는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회담의 주제나 분위기상 제재 문제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 회동에선 노 대통령이 먼저 대북 제재 문제를 거론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었지만 노 대통령은 미국과 대비되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먼저 "한국으로선 제재라는 용어를 쓰기를 매우 꺼리고 있다"고 했다. "미래의 남북 관계를 위해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북한 미사일 발사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각국이 취하는 (대북 제재) 조치가 있고, 북핵 문제와는 별개로 미국의 국내법에 의해 진행되는 (대북 금융제재) 상황은 또 그것대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새삼스럽게 또 다른 제재를 얘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이 안보리 결의 1695호에 근거해 곧 취할 것으로 보이는 대북 추가 제재에 반대한다는 뜻을 완곡하게 밝힌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언론 회동에서도 대북 제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추가 제재를 가한다는 방침은 불변이라고 강조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12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많고, 관련국과 협의 중"이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노 대통령은 13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선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조치가 언제쯤 종결되느냐"고 물었다. 북한의 위폐 제조 등 불법 행위에 대한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뜻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폴슨 장관은 "사법 조치라 시간이 좀 걸린다"며 제재를 풀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이에 노 대통령은 "미국의 법 집행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의 노력이 조화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해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 부시, 북한 인센티브에는 무관심=언론 회동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줄 수 있는 인센티브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김정일은 고립되는 것보다 인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그가 검증 가능한 방법으로 북핵 프로그램을 제거하면 분명히 더 좋은 길이 열릴 것"이라고 답했다. 인센티브를 논하기 전에 북한이 먼저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을 포기하는 게 옳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먼저 유연성을 보이길 원하는 노 대통령의 견해와는 영 다른 것이다.

워싱턴=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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