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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이사가?”/집없는 사람들의 설움: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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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집주인고발 손해볼까봐 포기”/싸우다 지쳐 “월세인생”으로/돈 못구해 임대아파트 기회놓쳐
불량주택재개발지구 세입자 정철진씨(37ㆍ서울현저동)는 요즘 하늘이 맞닿는 집근처 언덕배기에 올라앉아 담배만 피워대며 밤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집주인이 더 내놓으라는 전세금 7백만원을 만들지 못해 서울시가 재개발지구 세입자들에게 지어주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기회마저 놓치게된 때문이다.
꼬방동네 게딱지만한 방세칸을 1천3백만원에 전세들어 사는 정씨는 「전세를 2천만원으로 올리겠다」는 집주인에게 며칠간을 매달리며 하소연하다 부질없는 일임을 깨닫고 시름에 빠졌다.
「하는수없이 천연동에 창문도 없는 두칸짜리 지하셋방을 가까스로 구했다」는 정씨는 「식구들이 잠든 사이 언덕에 올라 시가지를 내려다 보노라면 그 많은 집들중에 내 가족을 편히 쉬게해줄 방한칸 갖지못한 자책감에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집에서 4년동안 살아와 세입자 딱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어 한낱 희망을 걸어왔었다」는 정씨는 「하도 억울해 집주인을 세무서에 고발하려다 일이 잘못돼 오히려 손해만 보는 일이 생길까 하는 생각에 이마저도 포기했다」고 했다.
동사무소고,세무서고 찾아가 법규정을 들먹이고 하소연 해봤지만 모두들 「집주인과 잘 상의해야지 우린들 별수 있는냐」는 식의 대답만 들었다는 정씨는 「그런 신고센터를 뭣하러 만들었느냐」고 꼬집었다.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무주택 서민들의 집없는 고통에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 이들에겐 임대차보호법 같은 졸속 생활입법을한 정치인ㆍ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만 높이 쌓여간다.
서울 성수동에 전세보증금 2백만원,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을 얻어 사는 임병호씨(37ㆍ택시기사)도 비슷한 사정.
「계약만기일인 20일 전세보증금 1백만원,월세3만원씩을 더 올려달라」는 집주인과 「싸우기도 싫고 어디에다 하소연해본들 별소용이 없을 것같아 집을 옮기기로 했다」는 임씨는 「인근 지하 단칸방을 전세 2백만원ㆍ월세10만원에 계약,두더지 인생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비정한 현실을 원망했다.
전ㆍ월세 폭등파동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중상층」이라 여겨온 사람들의 긍지마저 무참히 짓밟아 버렸다.
목동 20평짜리 아파트를 전세금 2천7백만원에 세들어 사는 권인선씨(37ㆍ주부)는 「평소 먹고 입는 것에 별 구애 받지 않고 작은 승용차도 한대 갖고 있어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으나 이번 전세파동이후 이런 생각이 착각임을 깨닫게 됐다」며 정부의 주택ㆍ집값 정책을 맹렬히 비난했다.
권씨는 「집주인이 얼마전 2천7백만원인 전세금을 3천8백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하더니 5일뒤 다시 4천만원을 내라고 해 하는 수 없이 인천시 만수동 27평형 주공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며 다른 집을 구할 시간도 주지 않는 주인의 일방적인 처사에 분개했다.
박혜자씨(47ㆍ주부)는 서울 상계동 35평형 아파트를 전세 2천9백만원에세들어 살고 있는 세입자.
대학생 3남매를 둔 박씨는 「그래도 나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으나 최근 집주인이 전세금을 2천1백만원이상 인상하겠다고 해 결국 전세가 싼 경기도 광명시내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지만 장학금을 받으며 부모의 힘을 덜어주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식들 보기가 민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달 한국부인회가 서울시내 아파트ㆍ단독주택 전ㆍ월세 입주자 3백82명을 대상으로한 전ㆍ월세 인상 실태조사결과 74ㆍ3%가 집 주인으로부터 임대료 인상요구를 받았고, 이중 97ㆍ9%가 최고 3배까지 인상 요구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었다.
또 그 이유로는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법적 최저임대기간이 2년으로 늘어났고 ▲정치적 불안 ▲부동산중개인 (복덕방)의 농간때문이라고 응답했었다.<김기평ㆍ이상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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