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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건축설계도 '수출 역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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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건축사사무소 이로재의 설계로 중국 하이난성 키온하이에 지어진 보아오 카날 빌리지 전경. 15만 평의 대지에 총 115가구가 건설됐다.

"중국인의 생활문화와 건물을 바라보는 눈을 파악하는 일에 치중했죠. 그들의 문화를 녹여내면서 고유한 건축 언어를 설계에 접목시킴으로써 성공적으로 중국 땅에 우리 설계 기술을 팔게 됐습니다."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승효상 대표가 밝힌 중국 진출 성공담이다. 승 대표는 중국 부동산 개발기업으로 유명한 소호그룹이 2005년 발주한 베이징 짜오와이 소호 상업.업무지구 국제현상에서 당선돼 설계를 맡았다. 승 대표는 "4만5000평 규모의 짜오와이 지역에 베이징 고유의 골목 양식인 호동(胡同) 형태와 푸젠성의 건축양식인 토루(土樓) 형태를 대입시켰다"면서 "독특한 설계로 '리틀 베이징'이란 이름으로 출품해 서구적인 건축양식과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승 대표는 짜오와이 설계를 놓고 자하 하디드(이라크).이토 도요(일본)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승 대표는 이후에도 하이난성의 주거 시설, 베이징 장성 주거 단지의 클럽하우스 등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한국 건축가와 설계사무소의 해외 진출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수많은 상업.주거단지와 고층 빌딩을 짓고 있는 중국은 물론 동남아.중동.아프리카까지 설계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도시 및 건축 설계 분야는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비해 국가 차원의 지원이나 협력은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이 국내 건축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 아프리카까지 간다=공간그룹은 아프리카 앙골라의 국제컨벤션센터 설계를 맡으면서 시공회사로 남광토건을 소개해 동반 진출했다. 공간그룹 박창배 소장은 "앙골라에서 공항.컨벤션센터.호텔.대학을 비롯해 신도시 계획까지 다양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면서 "인테리어.건물 관리 등 많은 분야의 전문가나 기업을 앙골라에 소개하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국 리장시 외곽에 약 30만 평 규모의 신도시를 설계하고 있는 심재호 범건축 대표는 "이제는 중동에서 한국 건축가끼리 경쟁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무영건축은 2000년 중국 칭다오에 치안타이그룹과 치안타이.무영인터내셔널(TMI)이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TMI는 2002년 칭다오에 약 3000가구 규모의 '선샤인 코스트'라는 주거단지를 설계했다. 무영은 6월 베트남에 SMDI라는 합작회사를 설립해 하노이 신도시 개발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 정부 지원 절실하다=이로재 승효상 대표는 "건축 설계의 해외 진출에 대한 가치를 우리 정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우 각 주재국 대사관에서 자국 건축가의 전시회를 여는 등 프랑스 건축가를 세계에 알리려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한 영국대사관은 지난해 서울에서 윌 알솝 등 자국 건축가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 주중 호주대사관은 중국에서 열리는 대형 건물 신축 기념식에 호주 건축가를 불러 중국 기업인에게 소개하고 있다.

희림종합건축사무소 정영균 사장은 "설계는 단순히 기술을 수출하는 차원을 넘어 건축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라며 "설계 분야의 중요성을 제대로 헤아리는 정부 관료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영건축의 이재옥 부회장은 "건축 설계는 건설업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산업인 만큼 해외 건설업에 치중된 정부의 지원을 설계 분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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