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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학파/한국경제 견인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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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남 무협회장 70년대 개발 산파역/이 부총리 국회의원 거쳐 입각/김 전부총리 KDI의 기초 닦아/김 경제수석 노대통령 “가정교사”/「정치력 뛰어난 현실참여형」 공통점/「관변 이코노미스트」 부정적 시각도
지난 3ㆍ17개각을 통해 이승윤 부총리와 김종인 경제수석 등 왕년의 서강대 교수들이 한꺼번에 둘씩이나 경제팀의 주요 포스트에 기용됨에 따라,지난 87년 김만제 부총리의 퇴임으로 「맥」이 끊기는가 했던 이른바 「서강학파」가 다시 관계의 주목을 받고있다.
「서강학파」라는 용어는 60년대 중반 2차 5개년 계획의 입안과정에 남덕우ㆍ이승윤ㆍ김만제 당시 서강대 교수들이 브레인 역할을 하고,69년에 남덕우교수가 재무장관으로 발탁된데 이어,71년에 김만제교수가 37세의 나이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초대원장으로 기용되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한 대학의 강단에서,그것도 서울대나 연ㆍ고대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서강대에서 이처럼 많은 고위 경제관료를 배출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계의 세칭 TK나 무슨 계파처럼 이들「서강학파」의 인사들이 특별히 끈끈한 인맥을 형성,서로끌고 밀어주고 한것도 아니다.
지금도 서강학파라고 세간에서 불릴 뿐,이들끼리의 정기적인 친목모임조차 없다.
따라서 관계에서는 이들 서강학파의 형성을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서강학파 교수들이 이론뿐 아니라 현실에 밝고 게다가 적극적인 현실 참여형이며,또 남덕우 무협회장이나 김만제 전부총리등이 관 재직 시절 정통관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정치력」을 과시했다는 등의 공통점은 오히려 우연의 일치라 하더라도,서강대가 유독 「장관감」 교수들을 많이 배출해 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지금도 서강대의 강단을 지키고 있는 한 교수는 60년대의 중반을 이렇게 기억한다.
『언젠가 이승윤교수에게 64년에 왜 서울대에서 서강대로 옮겼느냐고 물었더니 당시 서강대 월급이 서울대의 3배이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60년에 창립된 서강대는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기 위해 월급이나 연구실ㆍ연구시간 등 모든 면에서 파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또 재단의 간섭이 없이 거의 완전한 교수의 자율성을 보장했습니다.』
실제로 64년에 남덕우ㆍ이승윤교수가 서강대 강단에 섰고,65년에 김만제교수가 합류함으로써 당시 김병국교수(전 아시아 개발은행이사ㆍ현 대우경제연구소고문)와 함께 서강대의 경제학 교수진은 「미국 박사 1세대」를 가장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서 나름대로의 거시경제 모형을 갖고 있던 학자는 김만제 전부총리등 극소수에 불과했으며,김 전부총리는 국내에 컴퓨터가 없어 일본에 건너가 모형을 돌리곤 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평가교수단에 소속되어 정책자문등에 응했고 가장 먼저 남덕우교수가 박대통령의 눈에 들어 69년 재무장관으로 발탁된후 김성곤 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등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79년 대통령 경제특보를 지낼때까지 무려 10년간 한국경제의 「개발산파」 역할을 해냈다.
이후 71년에 김만제교수가 신문에 기고했던 정부정책에 대한 호된 비판의 글이 당시 고 김학열 부총리를 대노케 해 김부총리에게 불려가 토론을 벌였던 일이 인연이 되어 KDI가 창립되면서 김부총리의 추천으로 초대원장에 취임,KDI의 「10년 아성」을 지키며 「밑바닥」에서부터 「관변경험」을 쌓은후 83년에 재무장관으로 발탁됐다.
이승윤 부총리는 이보다 훨씬 늦은 76년에 유정회 국회의원으로 「변신」,80년에 당시 남덕우총리에 의해 재무장관에 발탁되고 이후 민정당 전국구의원등을 지내며 정치경험을 쌓아오다 이번 개각에서 부총리라는 요직에 다시 기용됐다.
이부총리는 특히 미국 유학시절 시카고대에서 노대통령의 사돈인 최종현 선경그룹회장과 함께 공부하며 친해져 그간 최회장의 「후원」을 많이 받아왔고 이번 개각에서도 최회장의 강력한 천거가 있었던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경제수석은 73년 이승윤 당시 서강대교수가 끌어 서강대에 몸을 담은후 80년 국보위 재무 분과위원으로 관ㆍ정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노대통령이 민정당 대표위원시절 「경제 가정교사」를 지낸 등의 연고로 이번에 경제수석에 발탁됐다.
이들 서강학파의 공통점은 묘하게도 하나같이 지극히 현실적이며 또 적극적인 현실 참여형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금융실명제에 대해 이들은 모두 부정적이며 굳이 분류하자면 이른바 성장우선론자들이다.
또 긍정적인 의미에서건 부정적인 의미에서건 다들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공통점도 갖고있다.
따라서 대표적인 「관변 이코노미스트」라는 부정적인 시각으로 서강학파를 바라보는 눈길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특히 최근의 학원 분위기와 관련해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들에게 「어용」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딱지」를 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 서강학파 교수들이 60년대 중반부터 신선한 지식을 바탕으로 명강의를 통해 곽태원 서울시립대교수,남상우 KDI선임연구위원,이덕훈 재무장관자문관 등 많은 이코노미스트를 길러냈고,재무장관ㆍ부총리 등을 지내며 8ㆍ3조치,부실기업정리 등 정통관료들도 하기 힘든 정책들을 통해 어려운 시기의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주역들이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서강대의 한 교수는 『이들의 이론과 풍부한 현실 경험을 학부 강의등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할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대신 서강대는 최근 야간경영대학원에 특강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들의 강의를 들을수 있는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밝혔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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