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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라디오 스타 … 안성기 & 박중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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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기 두 남자가 있다. 괴팍한 성질에 대책 없는 왕자병 퇴물 가수 최곤, 허풍 빼면 시체인 그의 반쪽이 매니저 박민수다.

두 남자가 또 있다.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은 '국민배우' 안성기(54.(右)), 그리고 어느덧 데뷔 21년차 중고참 박중훈(40)이다.

최곤과 박민수가 '바늘 가는 데 실'이라면 안성기와 박중훈은 '장군 하면 멍군'하는 오랜 선후배다. 이 네 사람이 서로 오버랩되는 영화가 '라디오 스타'(28일 개봉)다. '왕의 남자'로 1000만 신화를 썼던 이준익 감독이 이들 콤비를 위해 작심하고 만들었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퍼드에 비견되는 두 국가대표급 배우에게 바치는, 두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영화"라는 게 감독의 말이다.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 것은 이번이 네 번째.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99)는 모두 충무로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이 영화에서 극중 주인공과 실제 두 사람은 모두 20년지기다. 퇴물 가수가 지방 라디오 DJ로 일하면서 지역민들과 교감을 나눈다는 이야기에는 이들의 우정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푸근한 이야기에 객석은 어느새 울고 웃는다.

# 삼청동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시사회에서 나온 호평 덕인지 상기된 표정이었다.

안성기=찍으면서 이렇게 행복한 영화는 처음이다. 고생하고 탈진해야 마음이 놓이는데 감독은 무조건 '오케이'지, 이러다 죗값을 치르는 게 아닌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완성되고 보니 단점이 진짜 없더라. 우리가 이렇게 잘했으니 칭찬해 달라고 아이처럼 조르게 되는 그런 영화다.

박중훈=형님이 아이가 되셨다. 감독님은 촐싹거리셨고. 하하. 나도 한 장짜리 시놉시스에 느낌이 왔다. 시나리오도 최고였다. 읽으면서 몇 번씩 눈물을 흘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최곤을 연기하고 있었다.

안=남자들이 티격태격하는 버디무비를 아주 좋아한다. 내가 잘 울지 못해 구박받는 배우인데 이 영화는 시나리오를 읽다 몇 번 울었다.

박=성기 형님은 가슴이 참 따뜻한 분인데 겉으로 드러나는 눈물이 적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형사에게 쫓기다 모친상을 당하는 장면에서도 눈만 빨갛게 될 뿐 못 우셨다. 이런 분을 울렸으니 대단한 시나리오다.

안=우리 둘이 같이 보낸 시간, 우리가 묻어 있는 영화란 것도 좋았다. 연기할 때 준비를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이번에는 대사도 대충 외웠다. 감정을 상상해서 만들거나 연극적으로 폭발시킬 필요 없는, 생활 같은 연기였다. 큰아들이 아빠 말투가 느껴진다고 하더라.

박=유추보다는 발췌에 의한 연기를 했다. 지나온 경험 속에서 발췌해 내는 연기 말이다.

#'라디오 스타'는 나이 든, 좋은 배우의 무르익은 연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기계적 역할에 갇혀 있던 안성기는 짓눌림 없이 능청을 떤다. 혼자서는 자장면도 비비지 못하는 '소황제' 박중훈의 짜증 가득한 얼굴은 서서히 풀려간다. 엔딩의 명연기는 벌써 화제다. 박중훈은 눈물과 미소를 동시에 머금고, 안성기는 말 한마디 없이 무수한 말을 건넨다.

박=솔직히 내 인기도 예전만 못하다. 그간 수많은 스타가 명멸하는 것도 지켜봤다. 그런 경험이 이번 연기에 도움이 됐다. 나도 20대에는 최곤처럼 인내심이 없었다. 그런 나를 반성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안=이번 영화로 '국민배우'란 타이틀을 벗고 싶다. 아무 수식 없는,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다.

박=내가 자동차라면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린 차다. 터널을 지날 땐 남들에게 안 보였을 뿐이다. 터널 안에서도 오직 갈 곳만 봤다. 그래서 이제는 들판이라고 환호하지 않고, 창밖이 깜깜하다고 좌절하지도 않는다.

# 어느덧 두 사람은 서로 상당히 닮았다. 건실하고 사회적 책임감을 아는 배우. 롱런하는 배우, 인생의 굴곡을 배역에 투영할 줄 아는 성숙한 배우. 그런 안성기를 좇아 박중훈도 가고 있다. 두 사람은 부산영화제 부집행위원장(안)과 집행위원(박), 배우협회 이사장(안)과 부이사장(박) 직함도 사이좋게 나누고 있다.

박='칠수와 만수'때 나는 3년차 신인이었고 형님은 내가 추앙하는 대배우셨다. '투캅스'때 와서야 역할이 팽팽해졌고 콤비란 말이 가능해졌다. 형님과 나는 가족 빼고는 가장 많이 만나는 사이다. 집도 300m 거리고 체육관도 같이 다닌다. 챙기는 경조사의 80~90%도 겹친다.

안=중훈이도 40줄에 접어들었다. 삶에 대한 신중함.진지함이 눈에 띈다. 영화 내에서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변화가 느껴진다.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배우다.

#두 사람은 이준익 감독의 속 깊고 농익은 연출력에도 찬사를 보냈다.

안=논리적이고 아는 게 많은 데 영화로는 아주 쉽게 푼다. 그러니 영화가 절로 넘쳐난다. 작은 배역들 하나하나가 다 주인공이다. 마이너리티에 대한 따뜻하고 공평한 시선이 참 좋다.

박=7080 가요를 배경으로 한 '7080영화'라 젊은 관객이 호응할까, 걱정하는 의견이 있다. 국내 영화 환경상 배우들이 보여주는 나이가 실제보다 10년 정도 어리다. 그러다 보니 실제 경험을 활용할 여지도 적고 쓰임새도 줄어든다. 그래서 나이 든 배우가 나잇값 하는 영화인 '라디오 스타'에 거는 기대가 크다.

글=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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