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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이민 100년…달라진 어제와 오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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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03년 1월 13일 아침,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증기선(갤릭호) 한 척이 도착했다. 이 배에는 낙원을 꿈꾸며 3주 전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 1백2명의 조선인이 타고 있었다. 조선은 당시 심한 기근과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뒤 3년 동안 7천5백명의 조선인이 하와이로 이민해 미국 한인사회를 형성하는 모태가 됐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낙원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과 중노동이었다. 오전 4시30분부터 하루 열시간 이상씩 살인적인 더위와 싸우며 사탕수수를 베고 옮기는 작업을 해야 했다. 꼬박 한달 동안 일해야 고작 신발 네 켤레를 살 정도의 돈(16달러56센트)을 벌 수 있었다.

배가 고프기는 조선땅에서와 마찬가지였으며 게으름을 피우면 얻어맞는 노예와 같은 삶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은 주류사회에 들어가기 위해 억척같이 돈을 모아 자식을 가르치고 사업 기반을 다졌다.

마침내 조선인들은 수적으로 훨씬 많았던 일본인과 중국인들을 제치고 먼저 경제적 독립을 이뤄 미국 본토로 진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한 세기 미국에 정착한 교민은 공식적으로 1백7만6천여명. 미국 전체 인구의 0.38%에 이른다. 유학생 등을 합치면 2백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인들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지 꼭 1백주년이 되는 올해 새로운 이민 열풍이 불어닥쳤다. 홈쇼핑 이민 상품이 순식간에 동나고 이민 박람회장마다 만원을 이루면서 이민 바람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올 들어 8월 현재 이민 신고자는 6천9백34명이며, 지난 6월 한달 동안엔 2001년 4월 이후 최고치인 1천1백73명을 기록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0일 전국 20세 이상 남녀 1천42명을 전화 조사한 결과 열명 중 세명(31%)은 '기회가 주어지면 이민을 가겠다'고 응답했다. 95년 14%에서 8년새 두배 이상으로 늘었다.

최근의 이민 특징은 젊은층의 '탈(脫)한국'현상이 두드러지다는 점이다. 20대 45%, 30대는 36%가 이민 의향을 보여 40대(28%)나 50대 이상(18%)보다 높았다.

이민에는 명암이 공존한다. 깨끗한 환경과 자녀 교육 등에는 대체로 만족하지만 언어장벽과 인종 차별 등 때문에 생업을 꾸려나가기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지난 한 해 한국에 역이민해 온 사람은 4천2백57명. 2001년보다 15% 늘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이민 바람과 1백년 전 하와이 이민과는 무엇이 다를까.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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