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과감한 투자로 질 높여야(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6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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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전문가 의견/과목 줄이고 종수제한도 해제/자율적 장학ㆍ편수행정 펴는 독립기구 필요
교과서,참으로 중요하다. 어렸을때 배웠던 교과서의 내용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뿐더러 우리의 사고방식과 인생관,그리고 가치관마저 지배해나가는 힘을 갖고 있다.
사실상 민족해방 당시 우리에게는 교과서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일제의 교과서 내용을 번안하면서 우리것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차차 미국과 그밖의 나라들의 것을 모방하기도 하고 발췌하기도 하여 조금씩 개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다섯차례의 교육과정 개정과 함께 교과서도 바뀌어 왔으며,기실 해방당시에 비하면 많은 발전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려면 아직도 길은 멀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여기에 교과서 정책의 부재와 혼란을 기점으로 하는 몇가지 문제점을 파헤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교과서의 내용이 정권에 따라 달라지고 있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이른바 국책과목을 넣었다 뺐다하면서 한정권의 주장을 그때 그때마다 요구하고 나서는 것은 한마디로 교과서의 정책기조가 흔들리고 있음을 뜻하며 조화로운 인간형성을 위한 교과서의 본질을 망각한 처사인 것이다.
물론 교과서에는 국정교과서와 개인 혹은 공저로 편집되는 2종 교과서가 있으며, 그중에서 상술한 문제점은 국정인 경우 더욱 심각한 것을 볼 수 있다. 앞으로는 교과서에 관한 한 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설정해 교과서 정책을 전개시켜야 한다.
또한 교과서의 제작과 관련하여 지적해야 할 점은 개방정책의 원리하에 자유재량권을 보다 넓게 활용하도록 유도함으로써 현대사회의 대원칙인 자율적ㆍ합리적 의사결정능력을 구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판에 박은 듯한 규준에 지나치게 얽매이다 보면 내용상의 풍요로움과 질적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의 국정교과 수를 축소하고 선택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가운데 2종 교과를 점차 확대해 나가되,과목당 다섯책이라는 제한을 과감히 철폐하여 고도의 질적 경쟁을 촉진시켜 나가야 한다.
이같은 과정을 지나는 가운데 참고서의 필요성이 약화될 것이며,부교재나 교사용 지침서를 개선하는 데 대한 관심과 열정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초등학교나 중등학교를 막론하고 현재 과목수가 너무 많다.
이것은 바로 교사의 교과운영에도 혼선을 빚게되는 원인이며,더더구나 학생에게는 부담스럽기 짝이 없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 것이다. 교과목수의 정선은 앞으로 교육의 질을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오늘날의 교과서는 과거의 천자문책자와 같은 독본이 아니다. 교과서를 통해 인지활동을 신장시키고 창의적 사고력을 증대시키며 문제해결력을 함양하도록 해야만 소임을 다할 수 있다. 구태의연하게 책가방속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교과서를 제작한다면 이처럼 낙후되는 일을 우리는 주변에서 그이상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과서제작과 공급에 관련된 문제는 이밖에도 많다. 우선 현대사회의 시장경제원칙에 따라 자유경쟁이 원활하게 시행되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운 일이며,비근한 예를 들어 교과서의 공급과정만 보더라도 공급비용을 5%선에서 잡고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사태가 학교와 공급자간에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같은 현상은 바로 교과서가 선의의 경쟁이 아닌 전매상품화 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게 되는 것이다.
교과서의 값도 문제가 있다. 담배한갑에 1천원을 받고 월간잡지 한권에 5천원을 받는데 교과서 한권은 1천5백원 내지 2천원선에 불과하다. 비싸게 받아야만 좋아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아니지만 어느정도를 인상해서라도 질적 개선을 찾아가야 한다. 일반사회인의 인식도 문제가 있다.
각종 세금이나 교통요금은 20% 혹은 30% 올라도 몇마디 불평으로 그치지만 교과서 대금을 10%선만 올렸을 때에는 온나라가 소란할 정도로 시끄러운 것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정부의 교과서정책 가운데서 꼭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바로 교과서 개선을 위한 투자다.
1950년대 초에 이스라엘 문부성이 새로운 과학교육을 위한 교재를 과학담당 교사들의 협조하에 이를 제작하기 위하여 당해 연도에 계정되었던 교원 현지교육및 연수교육 관계예산을 포함한 문교예산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투자를 결단함으로써 그 나라 과학교육의 디딤돌을 구축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할나위 없이 값진 암시를 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한 문교행정의 진수는 장학과 편수행정에 있을진대,우리의 경우 장학 편수분야가 열악함을 면치못하고 있는 것이 매우 한탄스럽다. 정부기구의 개편확대가 매년 이루어지고 있는 차제에,독립기구로서 자율권을 강력히 행사할 수 있는 「교과서청」이나 「편수행정청」을 발족시켜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정부의 편수행정 교과서저자ㆍ교과서제작사ㆍ공급자,그리고 일반 사회인의 인식 수준이 조화적으로 진보적 노력을 기울일때 우리의 교과서는 질적 고도화를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강신웅 홍익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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