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멀어지는 한·미 북핵 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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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11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 면담을 마친 뒤 장관실을 나서고 있다. 뒤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 신동연 기자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인 11일 미국 측에 북.미 양자 대화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것은 6자회담 재개와 남북관계 복원 등 다목적 포석이 깔린 것이다. 그러나 양자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정부의 의도와 달리 한.미 갈등만 노출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남북관계 복원 절박감 반영=이 장관은 평소 북.미 직접 대화를 강조해 왔다. 간부회의나 기자간담회 등에서 비공개를 전제로 "미국이 북.미 양자 대화를 논의하자는 북한의 6월 평양초청에 응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지난달 28일에는 방송에 나와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대화가 있어야 하며 미국과 북한 사이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이 장관은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에게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대화의 형식에 제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대놓고 말했다.

이런 입장 표명에는 먼저 표류 1년째를 맞는 9.19 공동성명의 운명에 대한 정부의 심각한 우려가 담겨 있다. 정부는'중대 제안'(200만kW 대북송전 프로젝트) 등을 통해 9.19 성명 타결의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고무됐었다. 하지만 "한국 외교의 승리"라고까지 내세우며 성명의 의미를 부각시켰던 낙관적 상황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와 북한의 막무가내식 반발로 인해 파탄 위기를 맞았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6자회담 재개가 불가능한 파국적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 미국이 내켜하지 않는 북.미 양자 대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런 절박감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대북대화 촉구는 7월 부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 이후 당국대화가 단절 상태를 맞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 한.미의 이견=이 장관의 '북.미 양자 대화'제안은 미국의 대북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와 달리 북.미 직접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때 공동성명 등 공동문서를 채택하지 않기로 한 것도 북한과의 협상 방식을 둘러싼 한.미 간의 시각차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공개적으로 불협화음을 드러내진 않겠지만 근본적인 대북인식과 해법의 차이로 가시적 성과를 만들어 내기 어렵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노 대통령은 대화를 거부한 채 압박 일변도로 나가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속내는 클린턴 행정부처럼 '북.미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압박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북.미 양자 대화를 둘러싼 한.미 간의 이견은 쉽게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다자'고집하는 미국=힐 차관보는 천영우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유엔총회 때의 '다자(多者)회동'을 제의했다. 북한을 포함한 6자회담 당사국에 몇몇 나라를 추가해 확대된 형태로 회담을 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이 이에 응하면 6자회담 재개의 통로로 활용하고 북한이 제안을 거절하면 대북 압박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의 동의 등 성사 조건은 까다롭다. 7월의 '10자회동'에서 보듯 북한이 불참하면 큰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이 이를 제의한 것은 북한 문제는 반드시 '다자'의 틀 속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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