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 맘 없던차에…” 어물쩍 연기/지자제법안 처리못한 여야 속사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보류 명분 찾기 마라톤 협상/서로 책임 미루며 속으론 “잘됐다”
여야합의에 의해 6월 이전에 실시키로 한 지방자치제가 자칫하면 여야의 정략에 밀려 하반기로 미뤄질 판이다.
여야는 국회상임위활동 마지막날인 14일 세차례 다섯시간에 걸친 마라톤 정책위의장회담을 벌이는등 정치협상을 통해 지방의회선거법 절충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15일 오후 내무위를 한번 더 소집해놓고는 있으나 이미 여야간 「이번 회기내 미처리」를 잠정합의해 놓고 있어 민자당의 태도돌변이 없는 한 다음 회기로 넘어갈 것은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지방의회선거는 금년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에 실시가 가능하다.
○…지방의회선거법과 광주보상법 협상을 위한 14일 정책위의장회담은 민자당의 표결 강행 위협 속에 세차례나 열렸으나 쟁점사항에 대한 의견접근은커녕 절차문제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결렬.
이날 오후 3시부터 두 시간동안 계속된 1차회담에서는 광주보상법은 제쳐놓은 채 지방의회선거법의 정당추천제와 국회의원및 정당의 선거운동 제한 여부로 논란을 거듭.
전혀 진척이 없는 협상에도 불구하고 김용환민자ㆍ조세형평민당정책위의장 모두 표정이 어둡지 않았는데 조의장은 『내일이 본회의지만 융통성이 있으니 안된다고만 생각말라』며 『어떻게든 6월30일 이전에는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묘한 여운.
이때 양측이 합의한 것은 회담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강행처리않는다는 정도.
오후 7시에 속개된 2차회의에서는 의견절충을 포기하고 법안처리 연기의 명분찾기에 골몰.
이들은 8시30분께 회의장을 나오며 『국회운영등과 관련,당지도부와 협의할 일이 남아 있어 일단 9시에 다시 회동,그때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말해 법안처리 연기를 암시.
9시10분쯤 3차 회동한 두사람은 표정이 밝아 금방 발표문이 나올 것 같았으나 의외로 밤 10시까지 계속.
평민당측이 3차 회동에서 △지자제실시 시기 명시 △악법의 5월국회 처리 △정치협상 등을 함께 발표할 것을 조건으로 제시하고 갑자기 허를 찔린 민자당측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
결국 15일 오전 11시30분 재회동과 협상 중 법안처리 중지란 약속만 교환하고 결별.
○…김의장이 운영위원장실에 대기하고 있던 박준병사무총장,김동영총무와 협상결렬에 대한 대책을 숙의하고 있는 사이 정창화수석부총무는 『야당과의 격돌을 피하자니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야 하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자니 경위권발동,날치기 통과를 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평민당은 법도 통과 못하게 하고 지자제 안되는 책임도 지라고 하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고 평민당을 비난.
정수석부총무는 또 『평민당이 양보가 아니라 항복을 하라고 하는 모양』이라고 평민당측의 조건제시를 암시했는데 박총장도 『무슨 조건이냐』며 『내일(15일) 오후 내무위도 소집해놨으니 마지막 절충을 해보자』고 엄포.
그러나 김의장은 『평민당이 표결처리는 실력저지하겠다니 국회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 않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면목이 없으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평민당측에 책임을 미루고 『이에 대해 죄송하지만 인식을 같이 했다』고 평민당을 물고 들어가려 노력.
○…평민당은 여야 합의로 이번 국회의 회기내에 지자제선거법 개정안 처리가 연기되자 겉으로는 민자당이 지자제실시 연기의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내심 생각대로 됐다는 눈치.
김대중총재는 14일 저녁 조세형정책위의장이 민자당측과 협상을 벌이는 동안 국회총재실에서 계속 대기하며 사이사이 조의장등 당직자들과 대응전략을 숙의했는데 민자당측이 지자제법 개정안을 강행통과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의장의 말에 따라 가급적 지자제실시 연기는 민자당측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쪽으로 부각시키는 협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다짐.
평민당은 15일 아침 의총을 열어 지자제실시 연기 책임이 민자당쪽에 있다고 성토.
○…지자제선거 실시 연기에 있어서는 민자당은 경제계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 있고 평민당도 정당추천이 배제되고 김대중총재의 지원유세도 하기 어려운 상태의 지방의회선거엔 별로 탐탁잖은 반응. 내막적으로는 자칫 하다간 호남 이외의 다른 지역선거에서 결과가 신통찮거나 민주당에 밀리거나 하면 궁지에 몰릴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는 추측.
평민당이 처음엔 국회의원 유세를,그 다음엔 개혁입법과 동시통과를 요구한 것도 협상을 진전시키기보다는 결렬쪽으로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
평민당이 지자제선거법이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해 겉으로는 요란하게 비난하는 소리를 높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막적으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
결국 민자당과 평민당은 서로 다른 계산을 가지고 지자제연기에 「야합」한 셈인데 그 책임을 상대에 뒤집어 씌우느라 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민자당측은 여론의 동향등을 고려해 일단 15일에도 정책위의장회담과 내무위 개최를 준비해놓고 있는데 여론의 비판이 거셀 경우에는 그것을 빌미삼아 다시 밀어붙이는 재역전의 가능성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고 있어 청와대­당간의 마지막 협의가 주목된다.<이규진ㆍ김진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