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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혀 사는 아이들(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혜영아! 용철아! 어디 갔니.』
9일 오후 서울 망원동 대근연립 지하셋방을 찾은 아빠 권순석씨(30ㆍ부천 유진레미콘 경비원)와 엄마 이영숙씨(27ㆍ파출부)는 타다 남은 이불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혜영(5ㆍ여) 용철(4)남매는 이날 오전 방안에서 놀다 불이나 연기에 질식돼 숨졌다. 빠져나오려 발버둥쳤지만 창문도 없었고 방문은 밖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권씨가 새벽에 출근한 뒤 부인 이씨는 파출부 일을 나가면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자물쇠를 채워 놓았었다.
『점심 차려주러 올때까지 잘 놀고 있어.』
평소 번개탄에 불붙이는 장난을 좋아했던 남매는 이날도 성냥으로 불장난(경찰추정)을 했고 장난은 어이없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권씨부부는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
충남 공주군 계룡면 금대2리 고향에서 같이 자라 5년전 농사꾼 부부가 됐으나 9백평 논농사로는 생계를 지탱하기 힘들었다.
남매를 70세 노모에게 맡기고 부부는 지난해 5월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은 막 노동판을,아내는 가정부를 전전하면서 떨어져 살던 부부는 이를 악물고 돈을 모으고 빚을 합쳐 지난해 10월 겨우4백만원에 3평짜리 지하셋방을 장만했다.
혜영이와 용철이가 두달후 서울에 올라와 네식구는 이산가족신세를 면했다.
가난을 이기려고 부부는 열심히 일했다. 권씨는 새벽같이 경비원 일을 나가 30여만원을,이씨는 아침 7시부터 밤9시까지 파출부로 일해 35만원을 벌어 빚을 갚아나갔다.
제일 큰 문제는 어린남매를 돌보는 것이었다. 맡아줄 사람이 없어 할수 없이 남매는 방안에 갇혀야 했고 이 현실은 지금 부모가슴에 한으로 남아있다.
『부엌에 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했고 애들이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당할 것 같아 방문을 잠글 수밖에 없었어요.』
가슴을 치는 엄마 이씨의 몸부림속에 우리 도시빈민의 힘겨운 생존이 숨어 있다.<김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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