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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하의 행정/남는 쌀,느는 결식아와 분당의 경우(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요즘 사회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이나 신도시 건설공사가 진행중인 분당의 소음공해문제 등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새삼스레 정부의 역할이나 기능이 무엇이며 우리 정부는 과연 그 일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원초적인 의문에 부닥치게 된다.
물론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외교ㆍ국방ㆍ치안에서부터 물가ㆍ교통문제에 이르기까지 넓고 다양하며,이 자리에서 정부가 맡은 일을 모두 싸잡아 문제삼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해야 할 일의 본질은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계에 위협을 받지 않으며 편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데 귀착된다고 할 수 있으며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정부에의 기대는 행정이 이같은 수요에 맞추어 효과적ㆍ능률적ㆍ합리적으로 움직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행정이 과연 이같은 국민들의 바람에 제대로 부응하고 있느냐고 물을 때 그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례들중 하나를 우리는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이 필요하게 된 현실이나 분당의 소음공해 소동에서 발견하게 된다.
잘 알다시피 지난해의 대풍작으로 우리는 1년간 필요로 하는 쌀 수요량 3천9백만섬이외에 1천3백만섬에 가까운 여유분을 갖고 있다. 쌀의 과잉으로 보관이 문제가 되고 쌀값 하락에 따른 농민들의 피해가 정책과제가 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전국 국민학교 학생중 89년만 해도 8천5백여명이 점심을 굶어야 하는 결식아동이었다. 그 숫자가 올해에는 1만2천명으로 50%가까이 늘어나리라는 당국의 분석이다.
우리는 물론 모든 사람이 똑같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할 수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학생들중에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동들이 많다는 것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쪽에 쌀이 남아돌아가는데 다른 쪽에선 점심을 굶는 어린이들이 있고 그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민간에서 사랑의 쌀 보내기 운동을 펼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사태를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입만 열면 복지를 강조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인가.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예로부터의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적어도 먹는 문제만은 해결했다는 우리나라에서 이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정부의 조정기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분당문제만 해도 환경문제를 전담하는 부처가 엄연히 있는데 시범단지 분양까지 끝낸 단계에 와서 소음공해가 거론되고 있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듣기로 분당이 입게 될 소음의 정도는 60∼84데시벨로 주거지역의 허용기준치 50데시벨을 최고 34데시벨이나 초과하고 있다 한다. 잘 알다시피 분당은 40만명 정도를 수용할 주거중심의 신도시 자리다.
더욱이 우리를 경악케 하는 것은 이같은 소음문제가 도시계획단계에서 이미 거론은 됐으나 주무부처에서는 「충분한 홍보를 실시해 이를 알지 못하고 입주한 후 민원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미리 알고 입주했으면 그만이고,시끄럽게 굴지만 않으면 된다는 발상이다. 이게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나라의 정부가 할 일인가.
더 큰 문제는 행정부재현상이 이같은 몇가지 사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화돼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 국민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기 보다는 우리 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들을 찾아 작은 일이라도 한가지 한가지를 빈틈없이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잃어버린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고 큰 일들을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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