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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각의 적기와 실기/송진혁(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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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집권자들은 누구나 개각하라는 소리를 싫어하는 것 같다. 과거 4,5공 때는 신문이 개각설을 보도만 해도 기사를 빼라고 압력을 넣고 기자를 불러 기사의 출처를 캐기가 일쑤였다. 개각설이 집권자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권위에 손상을 주는 것처럼 들리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개각을 결심했다가도 개각설이 돌거나 야당이 개각을 요구하면 일부러 안했다는 얘기까지 있었다. 더묵은 얘기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6ㆍ25직후의 그 참패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신성모 총리서리겸 국방장관의 해임요구에 대해 『…제갈공명이 총리가 되고 장비가 총사령관이 되었다면 공산군의 대포와 전차를 막아낼 수 있었겠는가』고 그의 해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6공들어 개각설의 보도는 자유로웠지만 정부가 그것을 싫어하기는 전과 큰 차이가 없지않나 싶다.
현 내각,특히 경제팀에 대해서는 곧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나돈 것은 벌써 작년부터였고 그것도 까닭없이 나온 얘기가 아니었다.
현 경제팀이 어려운 여건에서 개혁을 밀고 나간 의지는 충분히 평가돼야 하겠지만,수출ㆍ물가ㆍ경기ㆍ증권ㆍ전세값 등 일련의 난국에 대한 책임은 책임대로 면하기 어렵고 난국을 푸는 하나의 수순으로서도 이들의 교체가 거론돼 온 것이다.
따라서 경제팀 교체는 단순히 야당의 정치공세이거나 항간의 설정도가 아니며,안정이냐 성장이냐의 논쟁에서 어느 편을 드느냐의 차원을 넘어 현실의 필요에서,사리의 당연한 귀결로서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느낌이다. 이쯤 되면 경제장관들 스스로도 자기가 떠날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충분히 느꼈음직하고 그 밑의 공무원들,관련업계 등에서도 그렇게 감을 잡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제팀 뿐 아니라 최고 치안문제만 보더라도 누구나 개각 필요성은 느낄 것이다. 연쇄방화사건이 1백건이 넘게 일어나도 단서조차 못잡고 사람을 몇이나 죽인 범인들이 경찰의 잠복감시를 뚫고 유유히 여자를 빼내 달아나도 속수무책이다.
비상령에 특별지시를 내리고 특별기구를 만드는 등 법석을 떨어도 온갖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리는 판이다. 취임후 한달안에 국민이 피부로 느끼도록 치안을 바로 잡겠다고 호언하던 내무장관은 그 말이 있은 후 몇달이 지나도록 자기말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치안책임자가 곧 갈리겠구나」하는 예감을 갖게되고 그렇게 기대하면서 정부를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 몇개월간 개각 필요성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고 개각 대망론이 실은 팽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개각은 그동안 몇차례의 계기가 있었음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개각을 않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오늘의 경제의 어려움,치안의 문제점이 전적으로 관련장관들의 탓일 수 없고 바꿔봐야 후임팀들이 지금보다 더 잘 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장관감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명사를 찾으면 참신함이 부족하고 참신함을 취하자니 명성이 없다,또 머잖아 국회요직개편도 다가오는데 그때 한꺼번에 인사를 하면 모양도 더 좋지 않겠는가…. 이처럼 여러가지 이유와 고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 현실은 정부가 타이밍이나 모양을 고려해 개각을 더 이상 연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된 것 같다. 정부는 당초 개각 기대감이나 필요감이 이처럼 높아지기 전에 개각을 단행했거나 개각설을 해소할 수 있어야 했던 것이다.
개각에 대한 필요감,또는 예감은 이미 높을 대로 높은데 막상 개각은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내각팀은 팀대로 안정이 안되고 일은 일대로 되지 않는다. 물러나는 것이 시간문제처럼 느껴지는 내각팀으로서는 중심을 잡고 일을 제대로 할 수도 없거니와 밑으로 영도 안서고 밖으로 권위도 서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개각도 않고 개각설도 해소 못하는 상태가 방치돼서는 곤란한 것이다.
가령 개각을 않고 현재의 팀으로 계속 일할 작정이라면 개각설이 나올 때 단호히 부인하고 현재의 팀이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줬어야 옳았다. 다시 말해 개각설을 해소할 수 있는 확실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던 것이다.
아무리 요직이 좋다고 하지만 물러가는 것이 시간문제가 돼 있는 자리를 한,두달 더 한다고 본인들에게도 좋을 리 없고 오히려 괴롭기만 할지 모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개각이 빠를 수록 그것을 자비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개각도 않고 개각설도 진화 못하는 기간이 너무 길었다. 사람을 바꿔 새로 손을 써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온 셈이고 경제악화와 치안불안 등으로 인해 국민이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짜증을 기대감으로 바꿔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온 셈이다.
이제라도 빨리 개각을 하는 것이 좋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과단성 있는 인사쇄신으로 국민에게 짜증ㆍ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는 경제ㆍ부동산ㆍ치안ㆍ교육 등 국정의 각 분야에 새바람을 불어 넣어야 한다.
6공정부도 이젠 뭣을 좀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는가. 새 진용ㆍ새 팀으로 정부의 침체되고,무력감만 보이는 분위기를 일신하고 새로 시작할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기다려도 충족되지 않는 개각기대감이 3월 중순 개각설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더이상 개각실기로 정책실기ㆍ쇄신실기의 이중,삼중실기를 않기 바랄 뿐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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