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주목해야 할 일본의 핵무장 논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일본은 미국의 핵 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며 "그러나 미.일 안보조약이 깨지는 등 대변동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핵 문제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권 자민당의 신헌법 기초위원회 전문(前文) 소위원장을 맡고 있다. 다음달 들어설 아베 신조 정권은 군사대국화를 겨냥한 헌법 개정을 천명하고 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일본 보수세력의 대표적 인물이 일본 내에선 금기시되어 온 '핵무장 필요성'을 공론화한 것은 매우 주목된다.

물론 일본의 핵무장에는 여러 가지 장애 요인이 있다. 일본 내 반대 여론이다. 한 예로 주한 일본 대사관의 고위 관계자는 "피폭 경험이 있는 일본인에게 핵무장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제 관계의 역학을 봐도 그렇다.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을 극력 경계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핵 보유국인 중국도 가만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를 가능케 하는 변수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는 경우다. 여기에다 대만 문제 등으로 미.중 관계가 위기에 빠지기라고 한다면 미국이 생각을 달리할 수 있다. '일본을 통한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기본 전략으로 굳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핵무장 논의는 그 자체로 한.중의 반발을 불러 가뜩이나 불안한 동북아 정세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것이다. 특히 일본이 핵무장을 위한 자금.기술.원료를 이미 확보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일본은 15~70t의 플루토늄과 세계 3위의 원자력 산업기반을 갖고 있다. 북한과는 달리 수개월 내에 핵무장이 가능한 것이다.

한국으로선 북한 핵은 물론 일본의 핵무장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한 입장에서 핵개발은 일리가 있다'는 정말 어리석은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의 핵무장 논의를 가능케 한 북한도 사태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도 동북아에서 핵경쟁이 벌어질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