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경찰 군화끈 풀고 구경꾼으로…/소 민주화시위 일어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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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공산주의는 암”포스터/차르시대 깃발도 등장
소련당국의 미온적 개혁추진을 비판하고 더많은 민주개혁을 촉구하는 소련사상 최대의 시위가 25일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시베리아에서 그루지야까지」 소련 전역32개 도시에서 수많은 소련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지난 4일 20여만명의 대군중이 참여,당시 크렘린에서 열리고 있던 공산당 중앙위 총회에 대해 압력을 가해 공산당 1당독재 포기와 다당제 도입,사적소유의 인정,인간적ㆍ민주적 사회주의 도입의 「양보」를 받아낸 바 있는 급진개혁파들이 주최한 이날 시위는 모스크바에서만 1백만명 가까운 군중이 모여 「당 아닌 인민에게 권력을」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한 정부 구성」 등 참다운 민주주의 실시를 요구했다.
소련사회의 민주화는 이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역사적 대세가 되고 있다.
○…모스크바 시민들은 군과 경찰이 당초의 경고와는 달리 시위를 진압할 생각이 없음이 분명해지자 데모행렬에 속속 동참.
경찰들은 군화끈을 풀어놓고 시위진압 용품들을 꺼내지도 않은채 시위를 수수방관.
고리키 광장에서 한 여성이 경찰쪽으로 향해 『장군,당신은 우리편인가』라고 소리치자 이 지역을 담당한 내무부 소속 책임자 포스토유크 소장은 부드러운 어조로 『분명히 그렇소』라고 화답.
○다당제 선거등 요구
○…보슬비가 이따금 내리는 가운데 무정부주의자들의 적ㆍ흑 깃발과 스탈린시대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사업회의 흰색바탕,하늘색 십자모양의 깃발등이 나부꼈으며 차르시대의 깃발인 적ㆍ청ㆍ백기도 등장.
플래카드에는 다당제 선거를 요구하는 내용과 경작을 원하는 사람에게 땅을 달라는 주장들이 많았으며 연사들중 일부는 전 각료와 공산당 정치국원의 사퇴를 요구,큰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시내 건물벽에는 「공산주의는 암이다」라는 포스터가 붙었으며 또다른 포스터는 「우리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식상했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쓰여있었다.
○…한 중년여성은 폭력사태 유발 가능성에 대한 당국의 계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 시위에 참가,『우리는 탱크와 최루탄,방패를 든 경찰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며 정부의 폭력위협을 통박.
이 여성은 「우리는 쿠데타가 아닌 직접선거를 원한다」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크렘린궁으로 향하는 모든 길목을 막고 있는 모래덤프트럭의 행렬과 경찰봉ㆍ물대포등으로 무장한 1만7천여명의 시위진압 경찰들을 향해 다른 시위군중들과 함께 용감하게 행진.
○모스크바서 20만 참가
○…이날 시위는 모스크바에서만 모두 11개 장소에서 최소한 20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시작됐는데 가든 링가 북쪽에서부터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하자 시민들은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거나 발코니에 모여 서 이들을 환호했으며 어떤 사람들은 스탈린에 의해 건설된 거대한 아파트 건물 옥상에 올라가 이들의 행진을 성원하기도 했다.【외신종합=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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