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되찾는 전후 세계질서/앞서가는 독일과 뒤처진 한반도(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독일은 2차대전 패전후 45년만에 분단을 극복하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8천만명의 인구와 1백80만의 군대를 갖게 될 통일독일의 존재는 비스마르크의 독일통일 당시와 거의 비슷한 경제ㆍ군사적 민족국가로서 유럽대륙의 중앙에 우뚝 솟아오르게 되었다.
이와같은 변화는 같은 전후 분단국이면서도 그 원인이 전혀 다른 우리로서는 부러움과 함께 통한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만 오늘과 같은 지구화의 축소된 국제정치 무대 안에서 통독이 한반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독일민족을 위해서뿐 아니라 우리의 통일전망을 밝게 해주리라는 기대에서 게르만민족의 재결합 전망을 다행하게 생각한다.
독일 통일이 예상외로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 강대국들의 입장은 아직 불투명하다.
미국은 부시대통령과 콜 서독총리가 지난주말 회담한 후 밝혔듯이 통일독일을 여전히 서방의 일원으로 정착시키길 원하고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통일된 독일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일원으로 잔류해야 하며 미군도 계속 주둔해야 된다고 못박고 있다.
반면 소련측은 공식적으로는 독일통일이 독일인들 스스로 해결할 문제라고 천명했지만 통일 독일이 전후 45년간 유지되어 온 가냘픈 세력균형을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기본입장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와같은 소련측 우려를 배려해 서방측은 통일이 되더라도 나토군이 주둔영역을 동독으로 확대시키지 않는다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부시­콜 회담에서 특히 전후에 획정된 현 국경선을 존중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바로 세력균형에 대한 유럽과 미ㆍ소의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두차례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국가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유럽의 전체 세력판도에서 떨어져 나간 상태로 통독이 이루어지는 것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통독의 돌파구는 마련되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이 남아 있다.
영국과 프랑스도 같은 맥락에서 통독을 지지는 하되 막강한 독일의 출현에 내심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들은 1차대전후 철저하게 비무장을 강요당했던 독일이 히틀러에 의해 급속히 재무장되고 2차대전의 참화를 일으켰던 역사적 교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유럽국가들은 독일의 「중립화」 여부와 별 관계없이 통일독일이 유럽의 경제ㆍ군사 균형을 뒤흔들 주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다.
베를린장벽을 허물어뜨린 것은 동독이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장벽과 국경을 스스로 허물게 만든 것은 서독이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중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북방정책도 동구나 중ㆍ소와 국교를 트고나면 북한도 결국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단순논리에서 한걸음 벗어나 보다 적극적인 대북 교류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남한만의 단독 유엔가입 같은 독주보다는 북한을 진퇴양난의 궁지로부터 벗어나 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게 유도하는 기본전략에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