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발전 막는 규제위주 행정(교육 이대로 둘 것인가:5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학사관리ㆍ인사 등 자율권 미흡/교육의 수월성 담당할 사립학교 육성 필요
요즘 사립 중ㆍ고재단관계자들 사이에는 「병아리 부화기」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당국이 배정해준 학생들을 위탁교육이나 다를바 없이 적당히(?) 졸업장과 함께 3년만에 「부화」시키는 타율적 교육을 빗대어 한 말이다.
건학이념의 구현 따위등 거창한 구호는 내밀기조차 쑥스러울 만큼 틀 속에 위축돼 있는 사학의 위상을 자조 섞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립 중ㆍ고교는 74년부터 실시된 평준화 시책 이후 국ㆍ공립에 편입된 상황에서 학생선발권도 없이 일정인원을 배정받아 유급ㆍ월반이 허용되지 않은 채 당국이 짜놓은 규격 속에 필요한 온도유지(교육)만 시키고 있다.
우리 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중학교 30.7%,고등학교 61%,대학 74.6%로 막중하다. 교육기회의 확대에 따라 사학의 의존도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 사학은 본질적인 생명가치인 자율성대신 타율에 얽매여 「위기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문교부의 행정관여가 필요이상으로 「이래라 저래라」하는 바람에 학생선발에서 교수임용에 이르기까지 무엇하나 학교자율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실정이다.
이른바 「교통문제」로 불리는 규제형태는 크게 나눠 두가지. 하나는 교육목표및 내용의 획일화 등 학사관리상의 통제이고 다른 하나는 인사ㆍ재무 등 행정재정 운영상의 통제.
『욕심대로라면 수학시간을 이과의 경우 주당 12시간 이상,문과는 현재보다 2∼3시간 줄인 4시간 이하로 해 기초학력을 강화하는 한편 정서ㆍ교양교육에 중점을 두어 교과과정을 학생적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싶어요.』
전주 S고 설립자는 『그렇지만 획일적으로 묶어놓은 규정이수단위와 대입과목의 비중과다에 따라 가르칠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10년전 학교설립 때만해도 자신의 교육관을 펼 수 있는 최소한의 자율성을 기대했으나 적지않은 실망을 감수해야 했다는게 그의 얘기다.
서울 S여고 재단은 지난해 여름 전교조간부인 이 학교 이모교사의 직위해제를 놓고 말못할 곤욕을 치러야 했다. 동료교사나 학생들의 집단반발을 구태여 감안하지 않더라도 14년간 봉직해온 한 식구를 쫓아내듯 내몰수는 없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거듭된 문교부장관의 강경징계방침 천명과 무관치 않은 당국의 압력 앞에 사학 고유의 인사권은 무력해질 수밖에 없어 끝내 직위해제시키고 말았다.
서울 S예술고는 학교 특성상 학생선발권은 예외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나 등록금은 획일적으로 그어져 일반교실수의 세배나 되는 70개 실습실에다 과목당 실기교사ㆍ실기심사위원까지 둔데 따른 지출과다로 경비마련에 해마다 애를 먹고 있다.
이에따라 쥐꼬리만한 정부보조금과 재단출연금으로 근근히 메워가고 있지만 수익자부담 원칙에 근거한 등록금 책정권은 인정안하고 학생선발권만 인정하는 당국의 이율배반 속에 교육시설 확충에 쉽사리 엄두를 못내고 있는 형편이다.
교육의 공공성범위 내에서 최대한 보장돼야 할 자율권의 핵심인 교과운영권ㆍ인사권ㆍ등록금책정권 등이 이처럼 제약됨에 따라 건실한 전통사학은 건학이념의 퇴색을 맛보고 영세사학은 더욱 관의 손아래 예속될 수밖에 없다.
사학운영의 전반에 걸친 당국의 지시ㆍ감독 위주의 사학행정이 사학의 자율성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은 사립학교의 「공문서수발현황」이 입증하고 있다.
88학년도 부산소재 고등학교의 경우 평균 1천8백여건의 공문을 접수했는데 이중 지시전달 내용이 63.6%,협조가 21.4%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국ㆍ공ㆍ사립을 막론하고 대학재정의 고삐를 쥐고있는 당국이 최근 밝힌 『90학년도엔 소요발생빈도ㆍ학사운영실태ㆍ자구노력 등을 기준,각대학을 4등급으로 분류한 뒤 국고보조에 차등을 두겠다』는 방침은 규제행정의 단면이다.
전북 군산중앙고 김양규교장은 아예 『사립학교법의 경우 63년 제정이래 14차례나 개정돼 오면서 사학을 육성하기보다 규제와 감독을 강화시켜왔다』고 단정하기도 한다.
학교의 설립ㆍ운영ㆍ폐쇄 등에 인가 또는 감독권을 행사하고 시설ㆍ수업ㆍ학사 등에 관한 시정 또는 변경을 요구하며 교장을 비롯한 교원의 임면을 승인하는 등의 행정당국의 광범한 통제권이 오히려 사학을 침체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사학에 막대한 재정지원을 하면서도 충분한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반해 우리는 특히 고교평준화 이후 이를 역행해 온게 사실이다. 학생의 학교선택권,학교의 학생선발권이 없는 오늘날 사학의 위상은 미국의 교육학자 칼슨교수가 말했듯이 활기없는 하나의 「사육조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교육의 보편성은 국ㆍ공립학교와 평준화를 원하는 사립학교에서,수월성은 「자율사학」에서 각각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최용찬 전사립중ㆍ고등학교 교장회회장은 『정부가 사학을 못믿고 「타율이냐 자율이냐」를 저울질만 하면서 행정편의등을 내세워 규제에 머물러 있는한 사학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안남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