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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美에 연일 '적대포기-불가침' 촉구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연 사흘 부시행정부에 대해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와 불가침조약 체결을 촉구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최근 미국의 대북접근방식이 유화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와 함께 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과 때를 같이한다.

미국의 입장이 변화된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 것은 지난 11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에 부응하는 문서 보장에 응하기로 했으며 이미 그 초안을 마련중"이라고 밝히면서부터이다.

이어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16일 자신의 방미 성과를 설명하면서 "미국이 기본개념과 필요원칙에 대해 매우 심도있게 검토하고 있다"며 "미국은 과거 사례와 국제협약, 각종 양자선언 및 조약을 토대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 인사들의 이런 언급은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은 아니지만 이에 부응하는 조치를 부시행정부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부풀렸다.

그러나 북한은 이때부터 미국측의 유화 제스처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면서 적대시정책 포기와 불가침조약 체결이라는 근본적인 조치를 연일 촉구하기 시작했다.

이 차관보의 발언이 전해진 16일 조선중앙통신은 밤 늦게 '외무성 대변인 대답'을 보도했다.

이 대변인은 "최근 부시행정부는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그 무슨 '양보안'(concession proposal)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여론을 유포시키고 있으나 부시행정부의 실제 움직임은 이런 '양보'나 '평화적 해결' 논의와는 정반대"라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의 움직임은 결국 사술이거나 시간벌기용으로 북-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며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 및 불가침조약을 거부하는 어떤 회담에도 응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자신들은 대화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지만 앞으로 6자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포기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할 것인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17일과 18일 계속 이어지는 보도물을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17일 조선중앙통신은 '평화적해결설은 기만적인 위장술'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실제로 대조선정책을 전환할 용단을 내리는데 있다"면서 "우리는 대조선적대시정책 전환과 불가침조약 체결을 거부하는 그 어떤 회담에 대해서도 흥미와 기대를 가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18일에는 평양방송이 '시간을 벌어 제 볼장을 보려는 술책'이라는 제목의 보도물에서 "요즘 부시행정부 집권세력이 다음번 6자회담에서 융통성을 보일 것처럼 여론을 펴고 있다"면서 "우리 공화국(북)은 대조선 정책 전환과 불가침조약 체결을 한사코 거부하는 그 어떤 회담에 대해 사소한 흥미도, 기대도 가지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의 유화제스처가 부시행정부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북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측이 지적하는대로 시간벌기용인지는 미지수이나 북한이 부시행정부의 진의를 의심하고 있는 한 6자회담은 지속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6일 조선중앙통신 회견 말미에 잠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시간을 끌면서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북한은 '핵 억제력 강화' 수순을 밟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이를 '물리적으로' 공개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되면 핵 문제는 지금보다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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