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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상·훈장 '뇌물 잔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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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통령상.훈장 등을 미끼로 업체에서 뇌물과 향응을 받은 농림부 공무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수사과는 5일 정부 포상을 받도록 해주겠다며 업체에서 금품을 받거나 업무 편의를 대가로 산하기관에서 향응을 받은 혐의(뇌물 등)로 이모(50)사무관 등 농림부 공무원 15명과 이들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로 D한과업체 이모(47) 대표 등 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공사 예산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업체들로부터 돈을 모아 농림부 공무원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혐의(뇌물 공여 등)로 농수산물유통공사 직원 5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 돈 받고 서류 조작도=경찰에 따르면 농림부 식품산업과 소속인 이 사무관은 2002년 11월 '2002 한국전통식품 베스트5 선발대회'를 주관하면서 D한과업체 이 대표와 Y복분자 임모(41) 대표에게 "대회에서 입상하게 도와주겠다"며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이 사무관은 2001년 친구 허모씨에게 자신이 소유한 경기 평택의 땅 800여 평(당시 시가 7억~8억원 상당)을 팔아 돈을 갚겠다는 약속을 받고 2억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이 땅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11억원을 대출받은 허씨가 돈을 갚지 못해 땅이 경매에 넘겨질 위기를 맞게 되자 이 사무관은 이 대표 등에게 13억원에 땅을 사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대신 이씨는 선발대회 심사위원 명단과 맛.디자인 등 심사기준을 이 대표 등에게 넘겨줬다. 이 덕분에 이 대표와 임 대표는 각각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을 받게 됐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이 사무관은 2003년 산업훈장 수훈자를 추천하는 과정에서도 S전통한과 업체 김모(50) 대표로부터 3700만원을 받고 김모(57)씨 등 식품산업과 동료 3명과 함께 공모해 서류를 조작했다.

이들은 서류 실무를 담당하는 농수산물유통공사에 압력을 넣어 이 업체의 높은 산업재해율(17.5%)을 서류에서 누락시키고 30만 달러어치 한과를 수출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김 대표가 석탑산업훈장을 받도록 했다.

또 농림부 식품산업과장 최모(51)씨 등은 H식품협회 이모 회장이 전통식품 개발 용도로 받은 국고 보조금 19억5000만원을 부동산 투기에 활용해 40여억원의 차익을 남긴 사실을 적발했지만 눈감아 주면서 1500만원어치의 향응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농림부 산하기관인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김모(55) 부장 등 직원 5명은 2004~2005년 추석 때 개설한 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 현수막.부스 설치비 등을 부풀려 계산하는 수법으로 업체 세 곳으로부터 3500만원을 챙겼다.

이 돈 가운데 1000여만원은 2004년부터 14차례에 걸쳐 농림부 식품산업과 공무원들을 접대하는 데 들어갔고 나머지는 식대.용돈 등으로 썼다고 경찰은 밝혔다.

◆ 당사자들, 혐의 부인=이 사무관은 "평소 업체 대표들과 잘 알아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받은 것일 뿐"이라며 "당시 훈장 수상 등을 결정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고, 심사위원 명단을 넘긴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땅을 매입한 업체 대표들도 "필요한 땅을 정상적으로 매입했을 뿐 뇌물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 농림부 식품산업과는=식품의 품질인증과 수출진흥을 담당하고 있다. 정부의 훈장.포상 대상 등 우수 식품업체를 많이 추천하기 때문에 식품업체의 로비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 입건된 농림부 직원 대다수가 식품산업과 소속이었다. 이들은 자체 감사에서 업체로부터 술과 식사 대접을 받았지만 업무의 연장선에서 이뤄졌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모 사무관 등 3명은 본인들의 요청으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농림부 측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경찰에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혀 조용한 곳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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